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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응수(楊應秀)


양응수(楊應秀)                                                              PDF Download

1700년(숙종 26)∼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달(季達), 호는 백수(白水). 순창 출신. 아버지는 승의랑 양처기(楊處基)이고, 어머니 강화최씨로 최휴지(崔休之)의 딸이다. 지금의 전북 순창군 혁성면 괴정리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최씨부인이 가을날 한줄기에 다섯 개의 잘 익은 이삭이 달려있는 기이한 꿈을 꾼 이후에 선생을 낳았기 때문에 이름에 벼화변(禾)이 들어가는 수(秀)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양응수는 나이 9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4년 후인 13세 때에는 어머니마저 잃게 되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였기 때문에 부모를 보양하지 못한 불효의 죄책감으로 평생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성격은 의지가 굳고 강직하면서도 독실하였다. 한 예로 그가 63세 때에 친구가 죽었는데, 가난하여 시체를 덮을 염포(斂布)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안 양응수는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이불을 주어 염포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추운 겨울밤에 이불도 없이 지내면서도 ‘고인을 위한 일이라 행복하다’는 모습에서 그의 초연한 인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젊어서는 권집(權緝)에게서 배웠으나, 후에 양응수의 나이 38세 때에 경기도 한천(지금의 용인)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던 이재(李縡)의 문하에 들어갔다. 당시 이재는 낙론(洛論)의 거장으로 그의 문하에는 수많은 석학들이 모여들었다. 양응수가 이재의 문하에 들어가려 할 때에, 이재는 양응수의 학문적 자질이 있음을 알고 다른 문인들과 달리 각별히 대우해주었다. 양응수 또한 이재의 고매한 인품과 학덕에 심취하여 그를 스승으로 받들고 지성으로 섬겼으며, 두 분 사이가 부자지간처럼 지냈다. 어느 날 이재는 함께한 술자리에서 양응수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주었다.

 

훈훈한 취흥 돋우며  倚微醺

경의를 담론하고   而談經

백발 날리며    揚白鬚

시를 읊는구나   而哦詩

 

이 글은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학문에 정진하는 양응수를 보고 굳센 그의 기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재가 지어준 것이다. 이때 그 글을 본 동문들이 그를 양백수(楊白鬚)라 부르면서 희롱하였다. 이를 본 이재가 양응수의 호를 ‘백수(白水)’라 지어주었다. ‘백수’라는 두 글자는 문자 그대로 맑은 물이라는 뜻으로 그의 청아한 심성을 뜻하는데, 그가 흰 호수 위에 정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이재의 문하에는 송명흠(宋明欽)․김원행(金元行)․박성원(朴聖源)․민우수(閔遇洙)․임성주(任聖周)․유언집(兪彦鏶)․원인손(元仁孫)․이휘지(李徽之) 등과 같은 조선의 석학들이 잇따라 배출되었다. 그러나 이재 문하에서 학덕(學德)을 말한다면 양응수를 따를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1755년(영조 31)에 건원릉참봉에 제수되고, 이어 익위사부수로 옮겨졌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벼슬길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학문연마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양응수의 학문은 성인이 되는데 그 목적이 있었으니, 성인을 배우고 본받아서 이를 현실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데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으며,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성인이 되기 전에 미리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인이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도덕적 행실을 미루어 넓혀나가는 것이니 도덕을 실천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성인이 되는 공부는 반드시 학당의 강의나 독서를 통해서만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등 인간생활 자체가 모두 성인되는 공부이다. 이에

 

“도를 밖에서 구하는 것은 문자(文字)를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인의 학문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한편 양응수는 성인이 되는 학문방법으로 독서를 강조하였다.

“학문의 방법은 대상세계를 탐구하는 궁리(窮理)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반드시 독서에서 찾아야 한다”

라고 하여, 독서를 학문의 기본 요건으로 인식하였다. 양응수의 독서에 관한 견해는 그의 문집 곳곳에서 보이는데, 「위학대요(爲學大要)」편에 수록된 <독서법>에는 독서의 방법이나 효과 등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의 독서법에 관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양응수가 살았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서의 목적을 성인의 도를 배우는 것보다, 과거공부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 출세하여 명성을 떨치는데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양응수는 독서의 궁극적 목적을 성인의 도를 배워서 누구나 성인이 되는데 두었다.

“독서는 장차 도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서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독서를 하고도 도를 깨닫지 못하고 지식을 넓히는 것만을 능사로 삼기 때문에 도학(道學)과 속학(俗學)의 구분이 있다.”

독서의 목적은 많은 지식을 섭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성인의 도를 배워서 실천하는데 있다. 따라서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는 성인이 되는 ‘도학’과 달리 세속적 학문이라는 의미의 ‘속학’이라 구분하였다.

“옛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어찌 옛 사람이 아는 것을 나라고 해서 모를 것이 있겠는가”

라고 하여, 이러한 도학을 공부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양응수는 독서의 순서를 제시하였다. 제일 먼저 「소학」을 읽어서 청소하고 어른에게 응대하는 등의 일상생활의 기본 도리를 읽힌다. 다음으로 사서(四書) 가운데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서로 읽고, 그리고 오경 가운데 「시경」․「예기」․「서경」「역경」․「춘추」의 순서로 읽어 성현의 말씀을 공부한다. 사서와 오경의 독서과정을 마친 후에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주자대전(朱子大全)」 등과 제자백과와 잡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를 해나갈 것을 권장하였다.

“「논어」를 읽고 난 후에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 있고, 읽고 난 후에 그 가운데 한 두 구절을 터득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며, 읽고 난 후에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사람이 있다”

라고 하여, 사람마다 독서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나이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독서방법을 달리 제시하였으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널리 취하여 얻은 바가 많게 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는 사람은 글의 뜻이 간략하고 쉬운 것으로 함양하게 한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방법으로 꾸준히 독서해나갈 것을 권장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글을 읽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자, 이에 선생은

 

“다만 이것은 너무 많은 것을 탐하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의 복주 출신 진진지(陳晉之)는 아주 노둔하여 독서할 때에는 50글자를 가지고 반드시 200-300번을 읽은 뒤에 기억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반복하여 읽으면 글이 기억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가령 200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의 경우, 독서의 양을 줄여서 100글자를 반복하여 읽으면 기억력이 없는 사람도 저절로 기억할 수 있고, 이해력이 없는 사람도 저절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노둔한 사람이라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면 저절로 암기되고 이해된다.
또한 독서의 병폐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진도에만 급급해하는 것을 지적하였다.

 

“많이 읽을지라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한 걸음 물러나서 살펴서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

 

즉 한권의 책을 읽고 의미를 완전히 파악한 뒤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두르거나 조바심내지 말고 반복하고 완미하여 그 뜻을 깨달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비로소 독서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독서는 모르던 것을 아는 지식의 성취뿐만 아니라, 독서를 통한 생활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독서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독서 후에도 생활의 변화가 없으면 독서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저서로는 「백수문집(白水文集)」 30권 17책이 전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백수 양응수의 독서론에 관한 연구」(김오봉, 전북대학교 석사논문, 1995), 「백수 양응수의 「四禮便覽辨疑」연구」(김윤정, 「규장각」,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14), 「18세기 양응수의 독서법에 나타난 독서양상과 그 의미」(박수밀, 「국제어문」42, 국제어문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