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상의 ‘리’ 이해

 

이단상의 이해

 

강민우: 이단상선생님은 조선시대의 문관으로 부수찬, 교리, 병조정랑, 인천부사 등을 역임합니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상수학을 중심으로 독창적이며 개방적인 학풍을 구축하고 낙론의 대표격인 김창협이 심학의 기초를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쳐 낙론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습니다. 선생님의 문하에는 아들 이희조를 비롯하여 김창협·김창흡·임영 등의 학자가 배출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선생님의 학문세계입니다. 특히 이단상선생의 ‘리’ 이해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단상: 먼저 성리학의 개념적 정의를 해야 할 듯합니다. 앞에서 말한 도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리학은 공자와 맹자로부터 전해오던 유학사상을 북송시대의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소옹(邵雍)․정호(程顥)․정이(程頤)가 종합하고, 남송시대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학문체계를 말합니다. 성리학은 북송 때에 시작되어 명대까지 이어진 새로운 유학이라는 의미에서 신유학이라고 불립니다. 신유학 외에도 이학(理學)․주자학(朱子學)․정주학(程朱學)․도학(道學)․송학(宋學)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물론 이들 명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같은 학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강민우: 새로운 유학이라는 의미의 신유학, 즉 성리학은 주돈이에 의해 개척되고 장재와 소옹을 거쳐 정호와 정이 형제로 발전된 송학(宋學), 즉 북송의 이론적 흐름을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체계라는 말이군요. 그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단상: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은 리와 기의 개념으로 우주자연과 인간세계의 생성과 존재를 설명하고, 또한 인간세계의 심리적 현상까지도 리와 기의 개념으로 설명함으로써 이기론․심성론․인식론․수양공부론 등의 방대한 이론체계를 형성합니다. 이기론에서는 리와 기의 개념으로 이 세상만물의 존재와 법칙 등을 설명하고, 심성론에서는 인간의 마음구조를 설명하며, 인식론에서는 지식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며, 공부수양론에서는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강민우: 이기론․심성론․인식론․수양론을 거쳐 올바른 인간상을 확립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 위에다 이기의 선후(先後)문제, 동정(動靜)문제, 체용(體用)문제, 이일분수(理一分殊), 심통성정(心統性情), 미발이발(未發已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인심과 도심 등의 다양한 문제가 파생됩니다. 그 결과 성리학은 우주자연과 인간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형성합니다.

강민우: 내용이 너무 복잡합니다.

이단상: 전체적으로 성리학의 내용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니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윤곽만 그리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성리학은 인간세계를 뛰어넘은 광대한 우주자연의 지평 안에서 인간의 도덕적 당위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는데, 변화하는 광대한 자연세계의 질서야말로 인간세계의 도덕과 당위의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도덕적 근거를 우주자연의 질서에서 찾았으니, 여기에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동양적 사고가 내재하게 됩니다.

강민우: 결국 성리학은 인간의 도덕적 당위성을 자연의 질서에 근거하여 설명한다는 것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이러한 성리학의 영향은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후 중국과 한국의 유학은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전개되며, 17세기 일본에 전래됨으로써 동아시아의 보편적 학문으로 자리 잡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조선 500년의 통치이념이 성리학이었음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성리학의 위치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강민우: 실제로 국내에는 성리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성리학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자동차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도 이렇게 이단상선생님을 찾아뵙는 것이고요.

이단상: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이이(李珥, 1536~1584)선생의 제자입니다. 이이선생의 학문이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는데, 이들을 율곡학파라고 부릅니다. 이이의 호가 율곡(栗谷)이기 때문에 이이라는 이름보다 율곡이라는 호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이이와 짝을 이루는 조선의 유학자 이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황선생의 학문이 제자들을 통해 이어지는데, 이들을 퇴계학파라고 부릅니다. 이황의 호가 퇴계이기 때문에 이황이라는 이름보다 퇴계라는 호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유학사는 이들 이이와 이황을 중심으로 하는 율곡학파와 퇴계학파의 양대 학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강민우: 그렇군요. 그렇다면 율곡학파의 중심 학설은 무엇입니까?

이단상: 율곡학파의 중심 학설은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입니다. ‘기발이승일도’는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한 길뿐이라는 뜻입니다. ‘기발이승일도’는 율곡학파의 종주인 이이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이이의 ‘기발이승일도’는 이황의 호발설(互發說)에 상대하여 제기된 용어입니다. 이황은 그의 사단칠정설에서 ‘사단은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른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이다’는 호발설을 주장합니다. 이것을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부릅니다.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에서 이발과 기발, 즉 리가 발하고 기가 발하므로 호발설이라고 말합니다. 이황의 호발설이라 하면 이발과 기발을 의미합니다.

강민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는 이황의 호발설에 상대되는 개념이군요.

이단상: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황의 호발설에서 이이가 특히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발’입니다. 이이는 리는 작위성이 없는 무위한 원리적 개념이므로 절대로 발(發)과 같은 작위적 개념에다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황의 ‘이발’이라는 표현에 반대합니다. 이황의 호발설과 달리,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일도’로 이해합니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성이 발한 이후의 단계이므로 리와 기를 겸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함께 있으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고 리는 타는, 하나의 길 뿐이다’는 말입니다. 이들 리와 기 가운데 발하는 것은 기가 되고, 리는 작위성이 없는 무위한 개념이므로 기에 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발이승일도’라고 말합니다.

강민우: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발이기수지, 기발이이승지’로 이해한다면,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모두 ‘기발이승일도’로 이해한다는 말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러나 율곡학파에서는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이이가 주장한 ‘기발이승일도’를 그대로 묵수․전승하는 계열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이이의 학설을 옹호하면서도 개방적인 입장에서 이황의 해석을 수용하여 재해석하려는 계열이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송시열과 한원진 등의 계열이며, 후자는 이재와 이단상 등의 계열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율곡학파의 성리학에 대한 견해를 이단상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민우: 율곡학파 내에서 선생님의 제자들, 즉 이단상 계열에는 주로 어떤 학자들이 있나요?

이단상: 이단상 계열에는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임영(林泳)․박필주(朴弼周) 등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낙론계열의 학자들로서, 다소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개방적이라는 말은 이이의 학설만을 묵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황의 학설도 일부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단을 그대로 ‘도리가 드러난 것(道理之著見)’으로 해석합니다.

강민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이단상: 이것은 율곡학파의 정체성과 관련된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도리가 드러난다’는 것은 ‘리가 드러난다’ 또는 ‘리가 발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니, 결국 이황의 ‘리가 발한다(이발)’는 사단에 대한 해석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황의 사단에 대한 해석을 인정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사단을 이발이 아닌 ‘기발’로 해석하는 이이의 해석이 틀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율곡학파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민우: 갑자기 내용이 너무 복잡해집니다. 하나하나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먼저 사단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사단은 인간의 감정입니다. 인간의 감정에는 도덕적 감정이 있고 일반적 감정이 있는데, 사단은 도덕적 감정에 해당합니다. 사단이라 하면, 주로 측은․수오․사양․시비를 말합니다. 측은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수오는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거나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며, 사양은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마음이며, 시비는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입니다. 이때 마음은 감정과 같은 의미입니다.

강민우: 도덕적 감정이 사단이라면 일반적 감정은 무엇입니까?

이단상: 인간의 감정에는 사단 외에 또한 칠정이 있습니다. 도덕적 감정이 사단이라면, 일반적 감정은 칠정이며 주로 기쁨(喜)․분노(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을 말합니다. 이들 사단과 칠정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이이와 이황의 견해가 갈라집니다. 이들의 해석을 두고 학파간의 논쟁이 벌어지는데,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릅니다. 퇴계학파에서는 주로 이황의 이론을 견지하고, 율곡학파에서는 주로 이이의 이론을 견지합니다.

강민우: 그 구체적 내용이 궁금합니다.

이단상: 이황이 말하길 사단은 선한 정이고 칠정은 악으로 흐르기 쉬운 정이라 하여 서로 다른 별개의 정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이이는 정은 칠정 하나뿐이며 그 속에서 선한 정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 한다고 해석합니다. 이황이 선한 사단의 정과 악으로 흐르기 쉬운 칠정의 정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이는 칠정 속에서 선한 정만을 가리킨 것이 사단이니 결국 칠정 하나뿐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황의 사단칠정을 사단대칠정(四端對七情)으로 표현하고, 이이의 사단칠정을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으로 표현합니다. 전자는 사단과 칠정이 상대하는 대립적 관계라는 뜻이며, 후자는 칠정에 사단이 포함되는 포괄적 관계라는 뜻입니다.

강민우: 여기에서 이황과 이이의 이론적 차이를 엿볼 수 있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또한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근원적으로 구분된다고 하여 그 근원(소종래)을 구분합니다. ‘소종래(所從來)’는 그것이 따라 나온 곳이라는 말이니 근원에 해당합니다. 사단은 리에 근원하고 칠정은 기에 근원하며, 또한 사단의 근원은 리가 되고 칠정의 근원은 기가 됩니다. 이황은 사단이 선한 이유를 ‘리’에 근거지어 설명하고, 칠정이 악으로 흐르기 쉬운 이유를 ‘기’에 근거지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성리학의 이론체계인 이기론이 등장합니다. 리와 기는 현상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를 기라 한다면,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기의 존재 이유나 원리에 해당하는 것을 리라고 말합니다.

강민우: 리와 기가 무엇인지 그 내용이 너무 어렵습니다. 쉬운 비유로써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단상: 예컨대 의자가 기라면, 앉을 수 있게 하는 원리가 리입니다. 사람이 기라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본성․도덕성․양심 등이 리입니다. 컵이 기라면, 물을 담을 수 있는 원리가 리입니다. 철학적으로 표현을 하면, 기의 존재 이유가 바로 리입니다. 이황과 이이는 모두 리와 기라는 개념으로 사단칠정을 해석하는데, 이것을 사단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황은 사단은 리에 근원하므로 리가 발한 것(理發)이고, 칠정은 기에 근원하므로 기가 발한 것(氣發)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의 ‘이기호발설’입니다.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므로 ‘이기호발설’이라 말하고, 또한 리가 발하고 기가 발하여 서로 발한다는 의미에서 ‘호발(互發)’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리는 곧 성이므로 인․의․예․지를 말하며, 기는 주로 형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인․의․예․지에 근원하는 것이 되고, 칠정은 형체에 근원하는 것이 됩니다.

강민우: 이황이 보기에, 사단은 인․의․예․지의 성에 근원하고 칠정은 형기에 근원하나는 말씀이군요.

이단상: 또한 사단은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르는 것이라 하여 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라고 하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타는 것이라 하여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리가 발할 때에도 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칠정의 기가 발할 때도 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이황이 ‘기수지’와 ‘이승지’를 말한 것은 이이의 ‘이발이라고 하면 사단에는 기가 없는 것이 되고 기발이라 하면 칠정에는 리가 없는 것이 된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입니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성이 발한 이후에 드러난 정이므로 이때는 리와 기가 함께 존재합니다.

강민우: 이황의 호발설에 대응하여 이이는 ‘기발이승일도’를 주장한 것이군요.

이단상: 그렇습니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 발(發)이란 발동하거나 작용한다는 뜻이니 ‘기발이승일도’란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기이고 리는 타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리는 원리이므로 작위적 개념으로 쓰일 수 없고,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이며, 이때의 정은 성이 드러난 이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리와 기를 겸합니다. 사단에도 리가 있고 기가 있으며, 칠정에도 리가 있고 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황처럼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인 것이 아니라,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발’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단과 칠정이 모두 성이 드러난 정의 단계로 리와 기를 겸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있으며, 이들 중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리가 아니라 기이기 때문에 모두 ‘기발이승일도’인 것입니다.

강민우: 이기론의 구조에서 보면 이이의 이론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이단상: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각자의 입장이 있습니다. 이황은 사단을 그대로 ‘이발’로 연결시켜 선한 감정으로 확장시켜 나갈 대상으로 이해하고, 칠정을 ‘기발’로 연결시켜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이므로 조심하고 절제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합니다. 예컨대 측은․수오․사양․시비 등의 감정은 넓혀 나가도록 연습하고, 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 등의 감정은 단속시켜 나가도록 조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이 마음 또는 감정을 다스리는 수양공부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나 즐거움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항상 그 지나침을 경계했으며, 특히 분노와 미움과 같은 것은 엄격히 경계했습니다. 칠정이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지어 해석한 이유입니다. 사단과 같은 선한 감정은 확충시켜 나가고 칠정과 같은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은 단속해 나가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강민우: 사단과 칠정에 그런 깊은 뜻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이의 사단칠정설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이단상: 이이는 이황처럼 수양공부의 측면보다는 이론적 정합성을 추구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천지만물은 모두 리와 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리와 기의 관계에서 볼 때, 이들은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사물이든 리와 기는 항상 함께 존재하니, 리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리가 있습니다. 사단과 칠정 역시 성이 발하여 드러난 정이므로 모두 리와 기가 함께 존재합니다. 사단에도 리와 기가 있고 칠정에도 리와 기가 있습니다. 이때는 리는 무위(無爲)하여 작위성이 없고 기는 유위(有爲)하여 작위성이 있습니다. 리는 작위할 수 없고 기만 작위할 수 있으니, 발하는 것은 기이고 기에 타고 있는 것은 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발이승일도’가 됩니다. 이러한 이론적 구조는 사단과 칠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결국 이황이 수양방법의 측면에서 사단과 칠정을 이발과 기발로 구분한 것이라면, 이이는 이기론이라는 성리학의 체계 속에서 이론적 정합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단상: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단과 칠정을 선악의 문제와 연결시키는데, 사단을 선으로 보는 것은 모두 동일합니다. 다만 칠정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이황이 칠정을 악으로 흐르기 쉬운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이는 칠정을 선악이 결정되지 않는 중립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이황처럼 칠정을 악으로 흐르기 쉬운 감정으로 본다면, 인간의 감정이 모두 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이는 칠정이 절도에 맞지 않는(不中節) 경우에만 악으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마땅히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않거나 마땅히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이는 칠정이 발할 때에 기가 리를 따르면 선하고 기가 리를 따르지 않으면 불선하다고 말합니다.

강민우: 그렇군요. 이황과 이이의 사단칠정설의 차이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이제는 이단상선생의 사단칠정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은 이단상선생님의 사단칠정설을 알기 위한 배경설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단상: 사단칠정의 문제는 이황과 이이의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들의 이론적 차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저를 비롯한 문인들의 내용을 설명하여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강민우: 선생님의 사단칠정설의 이론적 특징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이단상: 저는 사단에서의 리를 도리가 드러나는 것(道理之著見)으로 봅니다. 이것은 이이가 이황을 비판한 내용의 핵심 부분입니다. 이이는 이황의 ‘이발’이라는 말을 비판하는데, 리는 형이상의 원리이므로 결코 ‘발’이라는 작위적 개념을 쓸 수 없으며 다만 기만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리는 정의도 없고 조작도 없는 무위(無爲)한 개념임을 강조합니다. 무위하므로 결코 발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발’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민우: ‘도리가 드러난다’는 것은 ‘리가 드러난다 또는 발한다’는 의미와 유사해 보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황이 말한 ‘사단은 이발이다’는 해석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겠군요.

이단상: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단을 그대로 ‘리가 드러난다 또는 발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칠정과 사단의 차이는 칠정이 ‘기의 기틀(氣機)’이 발동한 것이고, 사단은 ‘도리가 드러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기의 기틀이 발동한 것은 기가 발동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민우: 그러한 해석은 이황의 사단은 이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라는 내용과 달라 보이지 않는데요, 이러한 주장은 율곡학파 내부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았겠습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율곡학파 내에서는 몇 갈래의 분파가 일어납니다. 조선의 유학사는 16세기를 기점으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황이 제기한 ‘이발’의 명제를 둘러싼 논변입니다. 이것으로 율곡학파는 크게 세 계열로 분류되는데, ①이이 직계 계열 ②이재(李縡) 계열 ③이단상 계열입니다. 이이 직계 계열은 ‘기발이승일도’의 노선위에서 철학체계를 세우게 되는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 등이 있습니다. 이들 직계 계열은 이황의 ‘이발’을 부정하는 이이의 논리를 그대로 계승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김장생에서 비롯된 이이 직계 계열에서는 ‘기’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이이의 ‘리는 무위(無爲)하고 기는 유위(有爲)하다’는 대원칙이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민우: ‘무위하다’는 것은 작위성이 없다는 말이고, ‘유위하다’는 것은 작위성이 있다는 말이니, 결국 리는 작위성이 없고 기가 작위성이 있다는 뜻이군요. 작위성이 없으므로 발동(또는 발)할 수 없고 작위성이 있으므로 발동(또는 발)할 수 있습니다. 발동할 수 없으므로 ‘이발’이라는 말을 쓸 수 없고, 오직 ‘기발’이라는 말만 쓸 수 있겠군요. 그래서 이이가 이황의 ‘이발’을 비판한 것이겠습니다.

이단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김장생․송시열․권상하․한원진 등으로 이어지는 이이의 직계계열이 율곡학파의 적통이라 불립니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학문적 최대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