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 (9)

『대동야승(大東野乘)』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선비 이야기 Ⅲ

선비정신

 

솔선수범

리더의 역량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전근대사회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조직과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근대사회에는 없던 크고 작은 기업과 사회단체의 조직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의 자질과 역할은 그 조직의 성패는 물론 존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리더의 역량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솔선수범(率先垂範)이 있다. 솔선수범은 솔선과 수범으로 이루어진 용어이다. 전통적 의미로 솔선은 일찍이 사기에 보이는데 ‘앞장서다’의 의미이며, 수범은 한 무제가 세 왕을 책봉하면서 한 말로서 ‘법식을 내려 보이다’라는 본보기로서 모범의 뜻인데, 일찍이 남북조 시대 양나라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 보인다. 현대적 의미는 아마도 영어의 ‘leading by example’을 번역한 말일 것이다.

오늘날 교양인이라면 리더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게는 가정이나 소모임에서 군대의 상급자로서 직장의 부서장과 동창회나 모임에서 책임을 맡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정부나 학교나 지자체 조직의 기관장 또는 기업이나 작은 사업체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일은 매우 흔하다. 이렇게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끄는 역량 가운데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솔선수범이다.

수신제가

그렇다면 리더십이 요즘에만 문제가 되고, 솔선수범 또한 현대의 리더에게만 요구되었던 역량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유학이란 달리 말하면 리더십에 관한 학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단 유교 경전 가운데 대학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곧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또는 친애) 하는 데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라는 강령에서 ‘밝은 덕을 밝히는 일’은 리더의 역량 강화이고, ‘백성을 새롭게 하거나 친하게 하는 일’은 역량 발휘의 영역이며, ‘지극한 선에 머문다’라는 말은 성과달성에 해당한다. 그것을 더 자세히 나타낸 8조목을 보면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역량 강화에 해당하고,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역량 발휘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달성해야 할 성과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학의 정신을 잘 요약한 말이 논어에 등장하는 ‘자기 몸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라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이를 학술적 용어로 바꾸면 안으로 성인이면서 밖으로 왕이 되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이다. 내성(內聖)은 역량 강화 외왕(外王)은 역량 발휘의 영역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입만 열면 왕에게 ‘성군이 되십시오.’라고 한 것도 리더인 왕이 성인처럼 왕 노릇 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니까 유학을 리더십의 학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일반 리더십과 유학에 있어서 역량 강화의 차이는 그 강조점에 따라 달라진다. 곧 솔선수범, 신뢰 구축, 동기부여, 의사소통, 영향력 확산, 긍정적 풍토조성, 자기 개발, 구성원 개발, 조직 전문성 개발, 성과달성을 고루 강조하는 것이 현대 리더십이라면, 유학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역량은 솔선수범, 자기 성찰, 포용, 신뢰 구축, 의사소통 등과 관련된다. 곧 리더의 도덕적 능력과 품성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수신(修身)과 관련된 일이다. 그래서 대학의 격물·치지·성의·정심도 수신에 수렴된다. 리더인 군주가 자기 몸을 올바르게 닦으면 구성원들이 감화되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한다. 이는 선비들의 리더십이 자기 가정과 마을 그리고 벼슬에 나아갔을 때 적용되지만, 그 기초가 되는 것 또한 수신이다. 자식들에게 효도하라고 말하기 전에 선비 본인이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잘 지내며 자녀에게 자애롭게 대하고 부인을 공경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어른을 공경하며 벗들에겐 신뢰를 받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

선비들의 솔선수범

선비들의 솔선수범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실 가정도 하나의 작은 조직인데 현대 리더십은 별로 다루지 않지만, 옛날에는 대개 대가족제도였을 뿐만 아니라, 사대부 출신의 선비들은 하인까지 거느리고 있었으므로, 가정 내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그래서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거가(居家)」라는 장을 따로 두어, 선비가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 형제, 아내와 내 자녀, 그리고 형제의 자녀와 하인들을 이끄는 일과 치산(治山)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 솔선수범은 벼슬하기 전까지는 대개 가정이라는 틀 속에 제한된다.

가정에서 형제들에게 솔선수범한 사람은 처사 성담수(成聃壽)가 있다. 이육(李陸 : ?~?)의 청파극담(靑坡劇談)에 이렇게 전한다.

성담수에게는 형제자매가 10여 명이나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3년 상을 마치고 형제들을 모이게 한 다음 재산을 분배하였다. 이때 담수는 괜찮은 물건을 보면 곧장

“아무개에게 주어라.”

라 말하고, 하인 중에 착실한 자가 있으면 곧장

“아무개에게 주어라.”

라고 말하고, 부수어지고 변변치 못한 물건을 보게 되면,

“이것은 부모님의 뜻이니 내가 가져야겠다.”

라고 말하였다. 시집간 누이동생에게 집이 없어서 부모가 살던 본집을 주고자 했는데, 여러 아우가 굳이 말리기를,

“부모님이 계시던 집은 장자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라고 말하니, 담수는 말하기를,

“다 같은 부모의 자식으로 나만 홀로 집을 가질 수는 없다.”

라고 하고, 곧 가지고 있던 무명을 내다 팔아 누이동생의 집을 사는 자금으로 주니, 동생 인수도 또한 가재를 팔아 도와주었다. 두 형이 마음을 모아 철없고 어린 여러 동생을 차례로 장가들이고 출가시키곤 하니, 온 집안에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수신제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하는 선비의 행동이다. 솔선해서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고 재물에 욕심내지 않음으로써 가정의 화목을 이끌었던 사례이다.

또 관리로서 천하고 소소한 일에도 앞장섰던 분도 있다. 임보신(任輔臣 : ?~1558)의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에 보면 판서를 지낸 “김안국(金安國)은 성품이 부지런하고 치밀하여 천한 일도 꺼리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변치 않았다. 언젠가 추수하는 일을 감독할 때는 이삭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곡식 한 톨도 마당에 흘려두게 하지 않았으며, 쌀을 찧을 때는 싸라기와 쌀겨도 모조리 저장했다가 춘궁기에 굶주린 백성을 먹이게 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하늘이 만물을 낼 때 모두 쓸 데가 있도록 마련한 것이니, 마구 없애버리면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비웃으니 공은 웃으면서, ‘성인은 마음이 세밀하니라.’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중간급 조직 이상의 리더가 작은 일에 신경 쓰거나 간섭하는 일을 구성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의 지체 높은 관리의 이런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았던지 비웃은 이도 있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절약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체 높은 재상이 청렴하거나 바른 몸가짐을 보여주는 일은 모든 관리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보인다.

문경공 허조(許稠)는 엄숙하고 방정하며 청렴하고 근신하여 언제나 성현(聖賢)을 사모하였다. 매일 첫닭이 울 때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갓과 띠를 갖추고 단정히 앉아서, 날이 다하도록 게으른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항상 나랏일을 근심하고 사사로운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을 논의할 적에는 자기의 신념을 스스로 지키고 일 처리를 남을 쫓아서 이리저리 아니하니, 당시 사람들은 어진 재상이라 칭찬하였다. 가법(家法) 또한 엄하여 자제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사당(祠堂)에 고하고 벌을 주며, 하인들에게 죄가 있으면 법에 따라 다스렸다.

재상으로서 모범적 행동과 몸가짐을 앞장서 바르게 했다는 기록이다. 행동만이 아니라 재물을 탐내지도 않고 청렴하게 산 재상도 있다. 이 또한 필원잡기의 기록이다.

문정공 유관(柳寬)은 공정하고 청렴하여 비록 최상의 지위에 있었으나, 초가집 한 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생활하여 살림이 간단하며 소박하였다. 공무를 마친 여가에는 후생을 가르치기에 부지런하니,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와서 뵈려는 이가 있으면 고개만 끄덕일 뿐이요 성명은 묻지 않았다. 일찍이 한 달이 넘도록 장마가 졌는데, 삼대(대마의 줄기)처럼 집에 비가 줄줄 새었다. 그는 우산을 잡고 비를 가리며 부인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

라고 하니, 부인이 대꾸하기를,

“우산이 없는 집에서는 반드시 미리 방비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그가 껄껄 웃었다.

청렴을 솔선해서 보여 준 재상의 이야기이다. 장마 때 집에 비가 새서 우산을 쓰고 지냈다는 일이 압권이다. 누가 와서 뵐 때 성명을 묻지 않았던 일은 청탁이나 뇌물 받는 일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나라나 조직에 이런 리더가 있으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유관은 세종 때 우의정을 지냈고, 앞의 허조 또한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수신하는 교과서를 보통 대학이라 알고 있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대학은 수신의 이론적 근거가 풍부한 책이고, 실생활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몸을 바르게 하는 내용은 소학에 들어 있다. 그런데 흔히 도를 전수하는 계보인 도통(道統)의 관점에서 조선 성리학의 흐름을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진다고 말하는데, 길재에서 조광조까지는 이 소학의 실천을 모두 매우 중요시했다. 당시 김굉필을 ‘소학 동자’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 모두 소학 내용의 실천을 생활화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권별(權鼈 : ?~?)의 『해동잡록(海東雜錄)』에서 소개하는 김숙자(金叔滋)의 사례이다.

일찍이 길재의 문하에 유학하여 학문에 조예가 깊은 당대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남으로 돌아가 응천(凝川) 위에 초당을 짓고 산천에 취미를 붙이고 뜻대로 노닐면서 스스로 강호산인(江湖散人)이라 일컬었으며, 벼슬이 성균관 사예(司藝)에 이르렀다.

그는 평소에 항상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앉아, 비록 처자나 하인이란 할지라도 그의 게으른 모습을 보지 못하였고, 손님이 없을 때도 머리에서 관을 벗지 않았으며 허리에서는 가죽 띠를 풀지 않았다. 아름답고 화려한 의복이나 말안장을 좋아하지 않고 오로지 검소하고 튼튼한 것을 마련하였을 뿐이다. 말고삐나 안장의 끈이 끊어지면 삼으로 꼰 새끼로 대신하였다.

그의 사람됨은 행동이 조용하고 말이 적었으며 언행을 모두 법도에 맞게 하였다. 어버이를 효도로써 받들었고, 효도와 우애를 돈독하게 실천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먼저 자녀나 배우는 자들이 소학에 따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하게 하여 그 근원을 함양한 뒤에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를 허락하였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은 회초리로 때릴 필요가 없었고 배우는 이도 즐겁게 배웠다.

이는 비단 김숙자 한 사람의 모습으로만 보면 안 된다. 소학을 실천한 이들의 기본적 생활 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예의 김굉필이나 조광조의 등의 삶을 들여다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들의 학문과 조선이 5백 년 동안 유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후대에 성리학의 폐단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이들의 잘못은 아니라 후학들이 그들처럼 학행이 일치된 삶을 살면서, 솔선수범하고 시대에 맞게 포용적이며 신뢰를 받고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현대의 리더와 선비

현대의 최신 리더십은 리더의 역량을 골고루 발휘해야 하지만, 리더에게 고도의 자질과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특이 이 자질에는 도덕적이고 공정하며 사적인 이익보다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으로 사실상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과 같은 품성을 요구하고 있다. 곧 자기 성찰과 학습, 포용, 신뢰, 용기 등은 유학에서 말하는 군자의 상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냉엄한 현실에서 기업이나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 연구된 내용인데, 이는 왕조를 책임진 군주도 나라가 망하지 않게 경영해야 하는 맥락과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덕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탁월한 리더가 조직을 잘 이끌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 귀결하고 있다.

현대의 선비라면 바로 이런 리더여야 한다. 과거부터 전해온 한문 서적만 읽고 외며,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세상일과 무관하게 도덕군자인 양 점잖은 모습만 보이는 자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그가 무엇이 되었든 조직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업무에 능통하며 도덕적이면 그도 선비이다. 오로지 정권이나 기업이나 정당이나 군대나 경찰이나 또 무엇이든 간에 해당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상대를 속이거나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일은 오늘날의 선비가 할 일은 아니다.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혹 능력 발휘를 잘할지 모르지만, 시민과 국민과 나아가 인류의 복지에 보탬이 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현대의 선비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