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을 아는 선비들 (6)

 

『대동야승(大東野乘)』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선비 이야기 Ⅲ

선비정신

 

멋을 아는 선비들

멋이란 무엇인가?

멋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에는 멋을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또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 풀이도 형식적이고 더 따지고 들어가면 무엇이 아름다운지 세련된 것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보고 ‘멋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령 부모가 골라준 옷을 입으라고 하면 아이는 ‘에이! 이상해. 안 입을래.’라고 하면, 부모는 ‘무슨 소리야 내가 볼 때는 얼마나 멋있는데.’라는 등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멋에 대한 두 가지 쟁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멋이 무엇인지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멋이란 사람·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반에 중국문화와 다른 우리 문화의 특성 곧 민족주의의 근거를 탐구할 때 한국학을 추구하면서 논의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글에서는 그 논쟁을 소개할 여력이 없지만, 멋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무엇이냐 아니면 보편적인 무엇이냐 하는 논쟁도 있었다. 이는 멋에 대한 개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술적인 ‘미적 가치’의 형식으로만 정의한다면 보편적일 수 있고, 우리 민족만의 특유한 미적 정서에만 한정한다면, 한국적인 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같은 한국인 안에서도 앞서 소개한 일화처럼 부모가 생각하는 멋, 신세대가 생각하는 멋, 또 옛날로 보자면 양반의 멋, 서민의 멋, 선비의 멋, 장수의 멋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미적 가치로서 멋이 가진 특성이다. 가치는 상대성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제멋대로 산다’라거나 ‘제멋에 겨워서’라는 말이 바로 잘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멋이 미적 가치와 관련되며 상대적이어서 사람과 집단 또는 문화와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만 이해하자. 물론 그 공통점을 종합하여 한국의 멋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유교적 전통과 멋

멋이란 무엇일까? 멋을 보편적인 무엇으로 본다면 그것은 결국 멋에 대한 관념을 종합한 것뿐이다. 보편이란 결국 개별적인 것을 종합한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는 그 보편자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인류 인식과 과학의 진보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조선 선비라는 특수한 계층이 지니는 개별적 멋이라 해도 좋다. 각 선비의 멋을 종합했다는 의미에서 그 집단 내부에 있어서는 보편성을 띨 것이다. 한국 전체의 문화에서 보자면 특수한 것이지만, 그것이 영향력을 끼쳤다면 널리 퍼진 멋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멋을 다룰 때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유학을 떠나서 논하기는 어렵다. 유학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로서 예악형정(禮樂刑政) 곧 예법과 음악과 형률(刑律)과 정사(政事)를 자주 거론하는 것에서 볼 때, 그 가운데 예법과 음악이 들어 있는데, 행동의 고아한 품격은 예로서, 정서의 순화와 감정의 표현은 음악을 활용했다. 그래서 많은 선비들은 거문고나 피리 같은 악기 다루기를 좋아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논어를 보면 “시(詩)에서 일어나고 예(禮)에서 서고 악(樂)에서 완성된다(「태백」).”라는 말이 있는데, 앞서 말한 예악과 더불어 시가 추가되고 있다. 그래서 선비들의 모임에선 시가 빠지지 않았다. 사실 악도 엄밀히 말하면 서양에서 말하는 음악(music)만을 말하지 않는다. 무용까지도 추가된 종합예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 자신도 “남과 함께 노래 부르기를 잘했고 반복해서 부른 뒤에 조화를 이루었다(「술이」).”라는 말에서 조화를 이루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논어의 다른 곳에서도 ()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 조화는 중용의 “희로애락이 발동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부른다.”라는 말과 연결되는데, 사람의 감정과 정서의 표출이 때와 상항에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것이 다름 아닌 중용(中庸)의 정신이다.

이 중용의 정신은 철학적으로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에 거짓됨이 없는[眞實無妄」 또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思無邪] 성실의 도덕과 통한다. 곧 자연에서 사시의 변화가 성실한 일처럼 인간의 생각과 행동도 성실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오며, 그것이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예술의 특성과 연결된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의 예술은 가능한 인위적인 과장과 기교, 주위와의 조화와 균형을 깨는 웅장함보다는 주위와 어울리고 절제되고 조화롭고 단아하며 은근한 멋을 숭상했다. 선비들의 이러한 멋은 대체로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삶 속에서 드러났다.

조선 선비들의 멋과 여유

흔히 선비의 멋은 묵향 그윽한 서실에서 서책과 벗하며 사는 늙은 선비의 성성한 백발에서 느낄 수도 있다고도 하는데, 꼭 그런 것에 한정할 수만은 없고 소개하는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거기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선비의 멋을 정리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동야승에 소개하는 선비의 멋이란 대개 해당 인물의 삶을 통해 드러난 것이지, 어떤 예술 작품을 통해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마저도 소박한 삶 속에 나타난 여유나 아량 등과 함께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어떤 작품 곧 시를 두고 평가하는 글은 자주 등장한다. 그걸 다루기에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 글에서는 선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 멋과 여유만을 다루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멋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에는 예술 작품 외에 정원이나 생활 주변을 꾸미는 일이다.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는 정원과 누대(樓臺 : 누각과 정자)에 관한 사례가 보인다.

서울에서 이름 있는 정원이 한둘이 아니지만, 특히 이향성(李享成)의 세심정(洗心亭 :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은 가장 경치가 좋다. 정원 안에는 누대가 있고 그 누대 아래에는 맑은 샘이 콸콸 흐르며, 그 곁에는 산이 있어 살구나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봄이 되면 만발하여 눈처럼 찬란하고 그 외 다른 꽃들도 많았다. 이향성은 시를 매우 좋아하여 늘 시객(詩客)을 맞아들여 시를 지으므로, 나(심수경)도 여러 번 가서 구경한 일이 있었다. 이굉(李宏)이 세심정을 구경하고자 그 집에 갔었는데, 주인 이향성이 마침 병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굉이 시 한 수를 지어 그 문병(門屛 :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대문이나 중문 안쪽에 가로막아 놓은 담이나 널빤지)에 크게 쓰기를,

섬돌 앞의 푸른 대는 속된 것 고치기 어렵고(階前綠竹難醫俗)

대 아래의 맑은 물로는 마음 씻지 못하노라(臺下淸川未洗心)

라고 하니 한때 세상에 전해져 웃음거리가 되었다. 임진년 초봄에 내가 어느 친구의 집에 가니 그 자리에 이향성의 여자 하인이 거문고를 타고 있기에, 내가 시 한 수를 지어 그 여자 하인에게 주며, 그 주인인 이향성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 시에

거문고 소리 들을 만한데 타는 여자는 누군지(彈琴可聽誰家女)

스스로 세심대 하인이라고 말하네(自說洗心臺下人)

만 그루 살구꽃 피기를 기다려(要待萬株山杏發)

술병 가지고 봄놀이 감세(爲携壺酒去尋春)

라고 하였다. 그 후 전란으로 세심대의 경치도 다시는 감상하지 못하였다.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린 정원이 상상된다. 그 속에서 시와 음악과 술이 빠질 수 없다. 그 멋을 모르는 이굉의 시가 선비 사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선비들의 멋을 달리 풍류(風流)라 일컫기도 한다.

대체로 위의 사례는 선비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반적 사례이지만, 덕과 바른 행실과 음악과 문예가 조화를 이루어 멋이 드러난 분도 있었다. 다음은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 보이는 사례이다.

이정은(李貞恩)은 음률(음악)이 세상에 으뜸이어서 슬프게 연주하면, 지나가던 사람도 꼭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인품이 독실하고 돈후(敦厚)하며 스스로 겸손하고 식견과 도량이 있었다. 또 총명하여 학문을 하는 데도 그 이치를 먼저 터득한 후에 글 짓는 일을 다루어 스승을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고, 시를 지을 때도 그 격식을 먼저 다룬 후에 꾸몄으므로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덕을 닦을 때도 마음을 먼저하고 외모를 다음으로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다. 그의 행실은 지위가 높다고 남을 위엄으로 억누르지 않고, 가장 가난한 선비처럼 행동하였다.

이 사례는 덕과 인품과 행동과 예술적 재능이 잘 어울려 멋을 풍기는 경우이다. 이는 덕을 매우 중시하는 유학의 전형적인 멋있는 선비의 모습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멋과 풍류를 아는 사람 가운데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제외하면 섭섭하게 여길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워낙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성현(成俔 :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보면, 그는 왕자로서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을 잘하였으며, 서예가 천하에서 제일이었고 그림 그리기와 거문고 타는 재주도 훌륭하였다고 전한다. 게다가 정자를 곳곳에 짓고 선비들을 불러 모아 시를 지었으며 때로는 바둑과 장기를 두고 풍류가 끊이지 않았으며, 항상 술 마시고 놀았으며, 당시 이름 있는 선비로서 교분을 맺지 않은 이가 없었고 전한다.

이로 보면 그는 멋과 풍류를 지나칠 정도로 추구하였지만, 꼿꼿한 유학자의 멋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선비의 어머니가 “왕자의 도리는 문을 닫아 손님을 멀리하고 근신하는 길밖에 없는 것인데, 어째서 사람들을 모아서 벗으로 삼는가? 잘못될 것이 뻔하니 너는 같이 사귀지 말아라.”라고 경고하였는데, 뒷날 안평대군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반면 소박하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멋있게 산 사람도 있었다. 권별(權鼈 : ?~?)의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보이는 맹사성(孟思誠)의 사례가 그것이다.

맹사성은 정승이 되어서는 항상 문을 닫고서 손님을 만나지 않았는데, 여름에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겨울에는 창포 방석에 앉았다. 그의 좌우에 다른 물건이라고는 모두 깨끗하고 간결하였으며, 단아하고 정중하게 지냈다. 선천적으로 음률(음악)을 잘 알아 언제나 피리를 쥐고 있었으며 하루에 3~4곡씩 부니, 사람들은 동구에 들어서서 피리 소리가 들리면 그가 반드시 집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정승이 되면 대단한 권력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부귀를 탐할 수 있지만, 맹사성은 그것을 삶의 가치로 여긴 것 같지 않다. 꾸밈없이 소박하게 살면서 음악을 즐기는 삶 자체가 하나의 멋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선비 가운데는 또 김정국(金正國)이 있다. 해동잡록에 따르면 그가 친구에게 준 글에 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곧 “20년 동안의 구차스러운 살림 가운데 두어 칸 집을 짓고 두어 이랑의 밭을 일구어 겨울에는 솜옷 여름에는 갈포(칡으로 짠 베)를 입는다. 누울 자리 밖에 남은 땅이 있고, 신변에는 남은 갈포가 있으며, 바리 밑에는 남은 밥이 있으니, 이 세 가지 남은 것을 가지고 한세상 편안히 누웠으면, 천 칸 넓은 집이나 만 섬의 옥같이 흰 쌀이며 백 벌의 아름다운 비단옷도 썩은 쥐나 진배없이 보인다. 여유 작작, 이렇게 처신하여 조금도 한이 없다.”라고 하였다. 역시 소박하고 여유 있는 선비의 삶이 보인다. 그는 여기서 욕심을 조금 부린다면 늙어서 있어야 할 10가지 물건을 소개한다. 곧 “한가로이 살며 구차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은 오직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세트, 친구 한 사람, 신 한 켤레, 지팡이 한 개, 차 달이는 화로 하나, 등을 대고 따뜻하게 할 기둥 하나, 서늘한 바람을 끌어들일 창 하나, 잠을 맞이할 베개 하나, 타고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그만이다. 노후를 보내는 데 이 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랴.”라고 하여, 노후의 멋있는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정리하면 선비들의 멋이란 시를 짓고 음악을 즐기며 모여 풍류를 즐기는 일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덕과 학문과 행동과 삶이 일치된 삶 그 자체에서 더 우러나오는 무엇이었다. 어떤 하나의 예술 작품에만 표현된 아름다움이 이들의 전정한 멋은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멋

우리 시대의 멋이란 어떤 것일까? 상품 선전에 동원된 모델의 모습이 멋있을까? 대중 예술의 꽃인 연예인 이른바 ‘스타’라는 사람들이 멋있을까? 이들을 우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멋있는 사람들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성장하므로 청소년기에는 그런 멋을 추구하다가 생각과 지식이 깊어지면 그 멋의 대상도 바뀐다. 대개는 품격과 교양이 있는 대상을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대상도 문화적 산물이므로, 그것이 서구적일 수도 전통적일 수도 있다. 곧 가치와 문화적 취향에 따라 또는 교육이나 자본주의 문화에 의하여 오리엔테이션 된 미의식이 그 사람의 멋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그 멋이 촌스럽거나 세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가치 의식과 철학의 문제로 남는다.

그래서 멋의 종류는 많겠지만, 그래도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무엇이 멋있느냐고 묻는다면 해당 인물의 삶 전체를 통해 아름답게 우러나오는 멋이 최고라 하겠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추구했던 멋도 거기서 제외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