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대의 (2)

『대동야승(大東野乘)』을 통해 본 조선 시대 선비 이야기 Ⅲ

선비정신

 

선비의 대의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대선 때가 되면 각 후보 진영에서는 거창한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다. 가령 ‘정의로운 사회’나 ‘문민정치’ 또는 ‘나라다운 나라’ 또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따위가 그것이다. 그것들은 일종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이다.

대의란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로서,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의 사상에 이른다. 그런 대의에 근거해 춘추를 저술했고, 논어에서도 의(義)를 자주 언급한다. 명분(名分)도 대의와 뜻이 유사한데, 사물의 명칭과 분수에 합당한 도리를 말하며 역시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에 닿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대의명분이나 명분 그 자체가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내세우는 표면상의 구실이나 이유라는 의미로 쓸 때가 많다. 원래는 좋은 뜻이지만 역사적으로 그것을 불순한 의도로 남용하여서 용어의 의미가 그렇게 변했다. 이런 용례는 한두 가지만이 아니다.

2022년 대선에서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명분으로 내세운 쪽이 이겼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내세운 대의명분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생기면,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되고 그것이 커지면 정권을 지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라는 신령스러운 그릇과 같아 함부로 다룰 수도 없고, 본인들이 지킬 수 없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그저 정권을 잡기 위한 빈말이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의와 청렴

청렴(淸廉)은 성품과 행실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대개 물질적으로 탐욕이 없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일에도 사용된다. 그래서 조선 시대 이상적인 관료의 모범으로서 청백리(淸白吏)가 있다. 이것은 일정한 기준에 의하여 의정부에서 뽑아 관리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다. 여기에는 관직 수행 능력 외에 여러 기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청렴(淸廉)·근검(勤儉)이 있으며, 청백리는 모두 217명이 있다. 관리가 이 정도이니 관리가 아니면서 대의를 지키며 청렴하게 사는 선비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대의와 청렴은 개념적으로 다른 말이지만, 실제적 행위에 있어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되지 않는 덕목이다. 올바른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탐욕스럽게 될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큰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되고 작은 뇌물은 받아도 된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뇌물인 이상 이율배반이다. 그래서 해당 선비들은 털끝만큼도 사적인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 그가 만약 관리라면 사욕을 채우지 않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면 대의를 실천하는 일이 된다.

그러니 따로 크게 물려받은 재산이 없이 오로지 국가에서 제공하는 녹봉만으로 청렴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가난한 친지나 이웃을 돌보다 보면, 그런 공직자는 늘 가난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렴에는 또 항상 청빈(淸貧)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선비들도 청렴하면서도 청빈했고 대의에 충실했다. 아니 대의를 실천하려고 보니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조선 시대 공직자의 대의

선비가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 때는 대의를 실천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고 어렵지 않다. 이것을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대부분 개인윤리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갈등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남에게 은혜를 입었거나 신세를 졌을 때, 그것을 갚을 형편이 되었을때 되갚는 일도 대의 가운데 하나이다.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거나 임금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나아가면 지위와 녹봉이 주어지므로 은혜를 입는 일이 된다. 그 은혜를 대의로써 갚아야 하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하는 선비들은 대개 관리들이다.

먼저 관리로서 대의에 충실한 선비 가운데는 이후백(李後白)이 있다. 이이의 석담일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이후백이 인사를 맡은 기관장이 된 뒤로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받지 않아 정사가 볼 만하였다. 비록 친구라 할지라도 자주 찾아가면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는 친척이 찾아가 말끝에 관직을 구할 생각을 은근히 비추니, 이후백이 정색하며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기록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모두 장차 벼슬을 시킬 사람들이었고, 명단에는 그 사람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자네 이름을 기록하여 천거하려 하였더니, 지금 자네가 관직을 구한다 말을 하니 그렇게 된다면 공정한 도리가 아니다. 애석하다! 자네가 만약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벼슬을 할 뻔하였는데.”

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그만 부끄러워서 돌아가 버렸다. 이후백은 언제나 벼슬 하나라도 시키려면 꼭 그 사람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두루 물었고, 합당하지 못한 사람을 잘못 올렸다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내가 국사를 그르쳤다.’

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의 평론이

“이후백 같은 공정한 마음은 근래에는 비교할 사람이 없다.”

라고 하였다.

임용할 명단에 이미 올라와 있는 사람을 청탁했다고 그렇게 취소할 수 있는가? 하지만 누군가 일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 일로 벼슬을 얻게 되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이런 오해를 받으면 그 공정성은 훼손되고, 국가의 인사 정책이 신뢰를 잃는다. 얼마나 사려 깊은 행동인가? 대의는 누가 보더라도 떳떳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석담일기에서는 조광조(趙光祖)의 사례도 언급하고 있다.

조광조는 젊었을 때 김굉필(金宏弼)에게 배웠다. 자질이 매우 아름답고 지조가 견고·확실하였다.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미해지는 것을 보고 분발하여 도를 실천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삼고, 행동을 법도에 맞도록 하였다.

그런 그를 속된 사람들이 웃고 손가락질하였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뛰어난 행실이 있어 추천되어 벼슬을 하게 되니 광조가 탄식하며,

“내가 벼슬과 녹봉을 구하지 않는데도 이 관직을 주니, 차라리 과거를 보아 임금을 모시는 것이 옳겠다.”

라고 하고, 드디어 과거를 보아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갔다. 경연에서 늘 도덕을 숭상하여 인심을 바로잡고 성현을 본받아 지치(至治 : 세상이 지극히 잘 다스리는 상태)를 일으켜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여 아뢰니, 그 말의 의미가 간절하였다.

광조는 마침내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하늘을 우러러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비처럼 했나니(愛君如愛父)

하늘의 해가 나의 충심을 비추리(天日照丹衷)”

이를 들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다.

이 글은 조광조에 대한 율곡의 평가이다. 그는 사적인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대의를 따라 나라와 임금이 잘 되기를 바랐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바르게 개혁하는 데는 언제나 반대 세력이 있어서 격렬히 저항한다. 조광조의 죽음은 개혁의 좌절을 의미한다.

또 나라가 위급한 때를 만나면 평소에 드러나지 않았던 충절과 대의가 발휘되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들도 그런 대의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이순신(李舜臣) 등도 그런 대의를 두고 왜적과 맞서 싸웠다. 잘 알다시피 이순신을 천거하고 그를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유성룡(柳成龍)이다. 김시양(金時讓, 1581~1643)의 부계기문(涪溪記聞)에서는 그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유성룡은 젊었을 때부터 문장과 학행(學行)으로 당시에 추앙을 받았다. 비록 오랫동안 정승의 지위에 있었으나 청빈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정치하는 것이 공평하고 밝으니, 사람들이 감히 사사롭게 벼슬을 구하지 못했다.

임진왜란 뒤 그는 영의정으로서 국정을 담당하여 쉴 새 없이 부지런히 경영하면서 마음을 태우고 정성을 다하였다. 국가에 이익이 될 만한 일이면 남의 말은 돌아보지 않았다. 악한 일을 제거하고 착한 일을 권장하여 차츰 자취가 드러나게 되더니, 마침내 이것으로 간사한 사람들의 참소를 입고 조정을 떠나 안동(安東)의 옛집으로 돌아가 10년 동안 벼슬하지 않고 지내다가 죽으니, 조야가 애석하게 여겼다.

나라가 위급한데도 자기만의 안위와 사사로운 이익과 명예를 탐하는 무리가 있었다. 관리는 물론이요 심지어 전장에서 싸우는 장수 가운데도 그런 자가 있었다. 이순신의 대의는 온 국민이 아는 바이지만, 그를 믿고 추천하고 후원한 유성룡의 그것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없었을 것이며 조선도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 한 사람의 대의가 이토록 중요하다.

이처럼 큰일을 두고 대의를 실천하는 일도 있지만, 자잘한 일에서도 실천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다음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보이는 사례이다.

판중추부사 조오(趙吾)가 합천(陜川) 수령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여름에 농어가 많이 잡혀서 썩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자기 집사람들에게는 조금도 맛보지 못하게 명하니, 사람들이 그 청렴에 탄복하였다. 누가 말하기를,

“그것이 썩어 땅에 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집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먹는 게 낫겠는데, 이런 데서까지 청렴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는구나.”

라고 하였다.

조오의 집이 매우 가난하여 그가 예조 정랑이었을 때에는 이리저리 셋집을 전전하였으며 양식과 땔나무가 없었는데, 동료 가운데 쌀 3 말을 주는 이가 있어도 받지 않았다. 뒤에 공석에서 이 일을 자랑하니, 그 자랑을 비웃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 남의 청탁을 일절 들어주지 않았으며, 늙어서 시골집에 물러 나와서도 살림살이가 변변치 못했으나, 털끝만큼이라도 남에게 요구함이 없었다. 참으로 청렴하고 독실한 군자라 할 것이다.

공직자가 뇌물을 받지 않고 청렴하게 행동하는 것은 공정한 태도로서 공직자의 대의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렇게 대의를 지키는 일이 하나의 풍습이 되기도 하였다. 대의를 어기고 부와 명성과 벼슬을 얻은 일을 더러운 일로 여겼다. 다음은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박동량(朴東亮 : 1569~1635)의 『기재잡기(寄齋雜記)』에 보인다.

의정부의 종 정막개(鄭莫介)는 간사하고 교묘한 말재주로 박승문(朴承文 : 朴永文의 오기로 보임)·신윤무(辛尹武)를 일러바치고 당상관까지 되었었다. 권벌(權橃)이 지평(持平)으로 있으면서 단독으로 그를 죽여야 할 죄상을 임금께 말했다. 비록 임금의 허락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이로부터 여러 사람이 모두 정막개를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여 사람 축에 들지 못하였다.

그의 집이 사복시(司僕寺 : 궁중의 말이나 가마 따위를 관리하는 기관) 냇가에 있었는데, 붉은 띠를 띤 조복(朝服) 차림으로 일하고 아침저녁에 시장 거리에 나서면, 동네 아이들이 곳곳에서 떼를 지어 기왓조각을 던져 쫓으면서 큰 소리로,

“고변한(고자질한) 정막개야, 붉은 띠가 가소롭구나.”

라고 하였다. 막개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쫓겨서 돌아갔다. 아이들이 늘 그렇게 했고, 사람들도 침을 뱉으며 욕하였는데 마침내 굶어 죽었다.

정막개는 원래 의정부에 소속된 노비였다. 중종 때 전 공조판서 박영문(朴永文)과 전 병조판서 신윤무의 집을 자주 드나들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告變 : 정권을 뒤엎으려는 반역 행위를 고발함)하여, 박영문의 재산과 노비를 상으로 받고 상호군에 제수된(임명된) 인물이다. 남의 얘기를 엿듣고 그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하는 일은 대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민심이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던 사례이다. 만약 대의로 고변했다면 주어지는 상훈도 거부해야 마땅하다.

현대 사회와 대의

오늘날의 대의란 무엇일까? 철학이나 종교적 가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사상을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대의가 될 수 있다. 가령 인류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집단이나 개인 사이 갈등을 일으킬 때 지지하는 가치에 따라 대의가 다를 수 있다. 조선 시대는 같은 문화권 속에서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했으므로 가치 갈등의 소지가 적었지만, 현대에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서 각자가 주장하는 대의가 다를 수 있다. 이는 절대적 가치가 존재할 수 없으니 대의 또한 그러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 모종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합의를 보든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다수 국민 또는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일이 대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지킨 대의는 필요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 가치는 여전히 필요하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어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가령 공직자의 대의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뇌물을 받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일을 수치로 여겨야 한다. 이는 공직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래야 하는 가치이다. 특히 선거판에서 가짜 뉴스를 퍼트리거나 상대 후보의 약점을 침소봉대하는 일은 대의가 거리가 먼 비열한 꼼수이다. 일반 개인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조직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물론이요, 공동체의 안위와 이익을 돌아보지 않고 사리사욕만을 위해 입신양명하는 따위도 애초부터 대의와 거리가 너무 멀다. 대의란 공동체를 위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