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사상 입문을 위한 기초 용어 해설

율곡사상 입문 (기초편)

율곡 사상 입문을 위한
기초 용어 해설

 

1. 하늘(天)과 태극(太極)

 

가. 하늘

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은 자연의 하늘이다. ‘푸른 하늘’, ‘넓은 하늘’, ‘구름 낀 하늘’ 등의 표현에 나오는 하늘은 자연에 존재하는 하늘이다. 그런데 여기서 설명하려고 하는 하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하늘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天)’에 대해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들은 하늘에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중국의 은나라 때에는 그러한 하늘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고 불렀으며, 많은 신들 중에서도 최고신으로 모셨다. 그 신은 기후나 재앙, 전쟁, 제사 등을 관장하고 인간 세계의 모든 현상을 주재한다고 믿었다.(미조구치, 25쪽)
주나라 시대에 들어서는 하늘에 대한 인식이 다소 변화했다.
『시경』이나 『서경』에 보이는 하늘은 덕이 있는 위정자에게 행운을 내리고, 부덕한 위정자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신으로 인식되었다. 그 신은 시시각각으로 통치자를 감시하면서 심판하고 행운과 재앙을 만들어내는 인격적인 신이었다. 하늘은 구태여 주술을 행하지 않더라도 위정자가 덕을 잘 닦으면 재앙을 피할 수 있고, 자연현상을 통하여 그 의지를 추측할 수 있는 신이 되었다.
이러한 주나라의 하늘 신, 즉 천신(天神)은 주나라 왕에게 명(命), 즉 천명을 내려 천하를 통치하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러한 자격을 받은 주나라의 왕은 ‘하늘신의 아들’ 즉 ‘천자(天子)’로 인식되었다.(미조구치, 26쪽)
이러한 하늘의 이미지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복잡하게 변모하면서 한편으로는 유교 사상으로 편입되었다.

『중용』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天命之謂性)”
‘명(命)’이란 목숨, 운수, 생명, 운명, 수명, 그리고 ‘명령을 내리다’, ‘분부하다’라는 뜻이다. ‘성(性)’이란 인간의 성품, 성질, 생명 혹은 본성을 뜻한다. 이러한 위의 인용문을 보면 하늘을 인간의 성품 혹은 본성과 연결지어 생각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늘은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친 존재인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50세에 천명(天命)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이것은 공자의 말로 『논어』에 나온다. ‘천명’이란 ‘하늘의 명령’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하늘은 죽어 있는 하늘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송나라 주자학자들은 ‘하늘은 리’(天者理而已矣)라고 하였다. 남송의 성리학자 진순은 다음과 같이 그 뜻을 설명하였다.(진순, 45쪽 참조)

하늘은 리(理, 원리 혹은 이치)이다. 옛날 사람들을 하늘을 말할 때 모두 리를 가지고 말하였다. 그래서 정자(程子)는 “하늘이란 전체적으로 말하면 도라고 한다. 이는 ‘하늘 역시 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말이 이것이다.” (天者, 理而已矣. 古人凡言天處, 大概皆是以理言之. 程子曰︰「夫天, 專言之則道也. 『天且弗違『是也.)
또 하늘이란 도(道)라고 하였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늘에 죄를 지었다.” 이 말에 대해서 주자는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늘은 곧 리이다.” 『주역』(본의)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又曰︰「天也者,道也。」『論語集註』 「獲罪于天」曰︰「天即理也」『易本義』)
“‘하늘에 앞서 하여도 하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행하여도 묵묵히 ‘도’와 부합되는 것이다. 또 ‘하늘의 뒤에 하여도 하늘을 받든다’는 것은 이치가 이와 같으므로 이를 받들어 행한다.”라고 하였다.(「先天弗違,謂意之所為, 默與道契。後天奉天, 謂知理如是, 奉而行之」)
나(북계 진순) 역시 일찍이 주문공(주자) 선생에게 직접 수업하면서 들은 바가 있다. 선생은 이렇게 설명을 하였다. “상제의 진노 또한 그 리(이치)가 이와 같다. 천하에는 리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이 때문에 제왕의 제(帝)자를 붙이는 것이다.” 이 말을 살펴보면 또한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푸르고 푸른’ 것은 하늘의 형체이며, ‘상천(上天)의 체(體)’란 기로 말한 것이요, ‘상천의 일(載)’이란 리로 말한 것이다.(又嘗親炙文公說︰「『上帝震怒『也只是其理如此。天下莫尊于理,故以帝名之。」觀此亦可見矣。故上而蒼蒼者,天之體也。上天之體以氣言,「上天之載」以理言。)

진순의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하늘’이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하늘은 리(理, 이치)이다.
2) 하늘은 도(道, 법도)이다.
3) 푸른 하늘은 체(體, 본체)인데 그것은 기(氣)로 말한 것이다.
4) 하늘의 일은 리(理)로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늘에 부과한 의미는 중국인들이 고대부터 축적되어온 하늘에 대한 이미지이며 이러한 이미지가 송대 성리학을 통해서 더욱더 정교하게 발전하고 성리학 이론의 기초개념이 되었다.
참고로 주자가 제시한 하늘의 개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미조구치, 35-36쪽 참고)

주자는 그동안 중국의 전통적인 하늘 관련 사상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하늘(天)의 의미를 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1) 푸른 하늘
2) 질서의 하늘
3) 근원으로서의 하늘

1)은 자연현상으로 생성, 운행하는 하늘을 말한다. 형체의 천天 혹은 푸른 창창(蒼蒼)의 천(天)을 뜻한다.
2)는 법칙적인 하늘, 혹은 질서적인 하늘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하늘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하늘이며, ‘소당연所當然’의 천, 혹은 리理로서의 천이다.
3)은 그렇게 만드는 근원으로서의 하늘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 즉 소이연(所以然)으로서의 주재하는 천으로서의 하늘을 말한다.

그는 중국의 전통적인 천(天) 관념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면 소옹(邵雍, 1011년~1077년)의 상수나 주돈이(周敦頤, 1017년~1073년)의 태극까지도 포함하는 사상체계를 세웠다.
주자는 ‘리’개념을 동원하여 천에 관한 그동안의 사상을 재정리하였다. 리로 모든 사상을 포함하는 사상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하늘을 안다(知天)’는 것을 격물(格物, 사물의 리, 즉 이치에 이르러)과 치지(致知, 지를 이룬다)로 설명하였다. 그러한 ‘격물치지’는 인간을 알고 부모를 섬기고 자신을 닦기 위한 기본이었다. 하늘을 안다는 것은, 하늘은 그것이 리(이치)이기 때문에 바로 자연의 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 삶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하늘과 리를 연계하여 그의 철학을 구축해나갔다.

나. 태극

유학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은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우리나라 태극기 문양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태극’이라는 개념과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주돈이의 <태극도설>
성리학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주돈이(周敦頤)는 『태극도설』이라는 그림 설명집에서 태극을 중심으로 그림을 배치하고 거기에서 우주창생과 인간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 설명하였다.
북송시대 철학자 주돈이는 옛날에 도사들 사이에서 전해오던 <태극도>라는 그림에 해설을 붙였다. 그는 이 해설에서 1)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2)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3)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그는 우주의 형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먼저 오른 쪽 그림의 윗쪽 3개를 설명함. ( )안의 추가 설명은 필자.)

무극(無極, 극이 없음)이면서 태극(太極, 커다란 극, 태초)이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陽)을 낳는다. 그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해진다. 고요해지면 음(陰)을 낳고 그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면 한번 고요해져서 서로의 뿌리가 된다.(이 부분은 오른쪽 그림 중 두 번째 그림을 설명한 것으로 음양의 움직임을 설명함.) 그것이 음으로 갈라지고 양으로 갈라져 음과 양이 세워진다. 양이 변화하고 음이 결합하여 수·화·목·금·토의 오행(다섯가지 요소. 세 번째 그림을 설명함.)이 생겨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火木金土.)

다음은 주돈이 『태극도설』의 나머지 두 그림을 설명한 부분이다.(이 부분까지가 우주 만물과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설>

다섯 개의 기(氣. 여기에서 기는 물질적인 기운, 즉 오행을 말함)가 순차적으로 퍼져 네 계절이 운행한다. 오행은 하나의 음(陰)과 양(陽)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無極)이었다. 오행이 생겨나 각각 하나의 성질이 있으니 무극(無極)의 진리와 음양의 이기(二氣), 오행(五行)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하고 엉겨붙어 건도(乾道)는 남성적인 것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적인 것을 이룬다. 이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조화롭게 생성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 오직 사람이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신령(神靈)하다.(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 本無極也.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 惟人也得其秀而最靈,)

오행에서 음양으로 그리고 이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인간도 함께 태어났는데, 인간은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다음은 그 인간들에 주목한다.

형체가 이미 생겨난 뒤에 정신이 지각을 발동하게 한다. 다섯 가지 본성(仁, 義, 禮, 智, 信)이 느껴 움직이면, 선과 악이 나뉘고 모든 일이 나오게 된다.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 온갖 일을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주장하여 사람의 표준을 세웠다.(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 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덕을 함께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함께하고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함께하며 귀신과 그 길함과 흉함을 함께한다. 군자는 그것을 닦기에 길하지만 소인은 그것을 거스리기 때문에 흉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과 양이고 땅의 도를 세움은 부드러움과 강함이며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다.”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시작의 근원을 돌이켜 끝을 반추하므로 삶과 죽음에 관한 말을 안다.” 위대하구나! 『주역『이여. 이것이 지극하도다.(故聖人與天地合其德,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悖之凶. 故曰: “立天之道曰, 陰與陽, 立地之道曰, 柔與剛,立人之道曰, 仁與義.”又曰: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 『易『也! 斯其至矣.)

이러한 주돈이의 태극도를 주자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철학체계를 구성하는 바탕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무극이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는 주장에 대해서 주자는 다음과 같이 수용하였다.(안유경, 44쪽 참조)

주자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보았다. 그는 태극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리의 다른 표현으로 간주하였다. 다만, 태극은 모든 리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리이다. 태극은 우주의 시작이다. 그것은 만물의 근원이며 동시에 도덕적 가치의 원천이다.
이렇게 태극을 정의하게 되면 무극이란 어떤 것인가? 주희로서는 태극이 최고 개념이기 때문에 태극 앞에 또 다른 차원의 태극, 즉 무극을 설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극을 단지 태극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하였다. 즉 태극은 우주만물의 최고 원리로서 존재하지만 그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또한 형체도, 고정된 모습도 없기 때문에 ‘무극’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리는 존재하기 때문에 ‘무극이 태극’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