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기호발설과 기발이승일도설

9. 이기호발설과 기발이승일도설

 

가. 이기호발설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란 ‘리와 기가 서로 발동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단칠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기호발’이란 리(理)도 발하고 기(氣)도 발한다는 뜻이다. 리가 발동 혹은 발현한다는 것은 리가 주동적으로 현상계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가 주체적으로 움직임을 보인다는 뜻이다.
퇴계는 사단칠정론에서 사단(四端)은 리가 발한 것이며, 칠정(七情)은 기가 발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천명신도」: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리기 모두가 발한 것으로, 이것이 ‘이기호발설’이다. 이기양발설(理氣兩發說)이라고도 한다. 퇴계는 ‘사단은 리가 발하고 기가 그것을 따른다’(『성학십도』: 四端理發而氣隨之)라고도 주장 했다. 칠정에 대해서는 ‘칠정은 기가 발하고 리가 그것에 편승한다(『성학십도』: 七情氣發而理乘之)’고 했다.
퇴계는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리가 기 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상대적으로 기라는 것은 리보다 하위의 존재라고 보았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의 발현인 사단을 소중히 하고 인간의 착한 의지(善意志)와 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권정안, 1995) 단순히 철학적인 이론에만 매몰되어 이러한 주장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조선의 사회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염두에 두고 성리학 이론을 세워나갔다.
퇴계와 오랫동안 논쟁을 벌인 고봉 기대승도 “감정이 발동하는 것은, 리가 움직여 기가 갖추어지거나, 기가 느껴서 리가 거기에 편승한 것이다”(情之發也, 或理動而氣俱, 或氣感而理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리가 움직인다(理動)’는 개념은 퇴계의 ‘리가 발한다(理發)’는 개념과 같다.
그런데 이런 논쟁은 왜 중요할까?
송나라의 주자(주희朱熹)는 세상의 만물을 성리학의 이기론으로 설명하였다. 이기론에 따르면 세상은 리와 기로 이루어졌다. 리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물의 ‘원리’이며, 기는 보이는 것으로 물질적인 존재이다. 주자가 이 이기론을 정의할 때 그는 리와 기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不相離), 서로 섞이지 않는 관계라고 하였다.(不相雜)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하였다. 이기는 어떤 사물 안에 다 담겨 있는데 리는 원리적인 측면을 지칭하며 기는 물리적인 측면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여기에 배구공이 있다. 땅에 던지면 공이 튀어 오른다. 튀어 오르는 것은 리라는 원리가 작동해서 튀어 오를까? 아니면 물질적인 기가 어떤 원리의 개입 없이 튀어 오를까? 사실 하나의 공 안에는 리와 기가 모두 있다. 이기호발설에 따르면 공은 리가 발하여 튀어 오르기도 하고, 기가 발하여 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리가 발하여 튀어 오를 때는 언제이고, 기가 발하여 튀어오를 때는 언제인가 설명하기가 다소 어렵다. 아니면 어떤 공은 리가 발하여 튀어오르고, 어떤 공은 기가 발하여 튀어 오르는가? 이 역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물질로 설명한다면 이기호발설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기호발설이 등장한 것은 인간의 감정을 논할 때였다. 즉 사단칠정론이다. 사단은 무엇인가, 칠정은 무엇인가 설명할 때 생겨난 개념이 이기호발설이다.
퇴계는 인간의 순수하고도 착한 개념인 ‘사단’, 즉 네 개의 실마리 감정은 리가 발동한 것이라고 보았다. 리라는 것이 본래 순수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순수하고 착하지 못한 존재인 기가 발동하여 감정이 생겨날 때, 그것은 칠정, 즉 일곱 가지 감정인데, 그 감정은 기를 닮아 ‘완전히 순수하지 못하고 또 완전히 착하지 못한’ 감정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감정은 리가 발동하기도 하고 기가 발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이기호발설을 설명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좋은 감정은 리가 발동하는 것이고, 나쁜 감정은 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주장에 대해서 율곡은 반대하고 부정하였다.

나. 기발이승일도설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란 ‘기가 발하고 리는 그것에 편승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리가 혼자서, 먼저 발현/발동하는 일은 없다. 항상 기가 발동하면 거기에 리는 마치 말을 타듯이 탈 뿐이다. 기의 움직임에 편승하여 리는 ‘원리’를 발현할 뿐이다. 이것은 율곡의 주장이다.
율곡은 퇴계의 이기호발설에 대응하여 이러한 ‘기발이승’의 주장을 폈다. 율곡은 리라는 것은 활동성과 작용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즉 스스로 활동도 못하고 작용도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발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사단과 칠정은 모두 인간의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둘 사이에는 어떤 구분이 없다고 보았다. 단지 사단은 칠정 가운데 선한 감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착한 것이며 칠정과 대응되는 것이고, 리가 발동한 것으로 보는 이기호발설과는 다르다. 인간의 감정이 발현할 때 발현하는 것은 기이며, 그것을 발하게 하는 까닭(所以) 즉 이유는 리라고 보았다.
율곡이 퇴계의 ‘리가 발하고 기가 그것을 따른다(理發而氣隨之)’는 주장을 비판한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황의동, 74-75 참조) 하나는 리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므로 절대로 혼자서 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작용을 능동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퇴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리가 혼자서 작용을 한다면 일단 성리학의 대전제가 무너진다. 성리학에서 리는 어떤 원리나 원칙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리가 발하고 기가 그것을 따른다’는 말은 언뜻 보면 ‘리가 먼저 발하면, 기가 나중에 그것을 따른다’는 뜻으로 들린다. 즉 시간적으로 리가 먼저고 기는 나중이라는 것이다. 시간의 선후 관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율곡은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한 것이다.
율곡이 보기에 우주자연이나 인간의 심성은 모두 기발이승의 형식만 존재한다. 자연현상도 작용과 변화는 모두 기의 소산일 뿐이다. 다만 리는 그 배후에서 기의 운동과 변화를 주재하고 그것이 가능하게 한다. 리의 존재이유는 거기에 있다. 리는 스스로 작용을 하지 않으면서 기의 운동과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황의동, 76)
기발이승, 즉 ‘기가 발하면 리가 거기에 편승한다’는 말은 우주만물의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다. 율곡은 순수한 존재론적인 시각에서 리와 기를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였다. 가치론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을 보고 이기호발을 주장했던 퇴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