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단과 칠정

8. 사단과 칠정

 

가. 사단

‘사단(四端, 네 가지 단서, 즉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의 ‘단(端)’이란 ‘단서’, 혹은 ‘실마리’라는 뜻이다. ‘바르다’는 의미도 있다. 한자 이름이 ‘바를 단(端)’이다. 그러니까 ‘바른 단서’, 혹은 ‘올바른 실마리’라는 의미도 있다.
‘사단’이란 원래 『맹자』(공손추장)에 나온 말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람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다 사람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흔연히 놀래어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려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를 무서워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맹자』 공손추상)

원래 사람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측은한’ 마음을 이렇게 소개한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을 인(仁, 어짐)의 단서(端)라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羞惡)의 마음을 의(義, 의리)의 단서(端)라 하고, 사양하는 마음을 예의 단서라 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시비(是非)의 마음을 지(智, 지혜)의 단서라고 하였다. 바꿔 말하면 어짐의 실마리는 측은지심이요, 의리의 실마리는 수오지심이요, 예의의 실마리는 사양지심이요, 지혜의 실마리는 시비지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주자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性)이다. 그리고 측은, 수오, 사양, 시비는 사단(四端)으로 정(情)이다. 그 정(情)이 발(發)하기 때문에 성(性)의 본연을 볼 수가 있다.(『맹자집주』) ‘인의예지’라고 하는 본성(性)은 인간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 사단을 확충해야만 참된 인간이 되고 또 본성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보았다.(송석구, 143쪽)
이러한 ‘사단’이라는 개념은 대개 다음에 설명하는 ‘칠정(七情)’과 함께 사용된다. 두 개념은 성리학의 논의에서 매우 중시되는 것으로 오랫동안 유학자들의 연구 주제였다.

나. 칠정

‘칠정(七情)’은 ‘일곱 가지 감정’으로 희(喜, 기쁨), 애(哀, 슬픔), 노(怒, 화냄), 애(愛, 애정), 구(懼, 두려움), 오(惡, 싫어함), 욕(欲, 욕구)을 말한다. 이는 『예기』(예운편)에 처음 등장한다.
고대 중국인들이 말하는 이러한, 인간의 7가지 감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1) 기쁘고, 2) 슬프고, 3)화나고, 4) 사랑하고, 5) 무서워하고, 6) 싫어하고, 7) 욕심을 내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 외에 우리는 생활하면서 다른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면 그리워하고, 통쾌하고, 상쾌하고, 짜증나고, 절망스럽고 등등 그런 감정들이다. 따라서 칠정이란 인간의 많은 감정 중에 일부를 지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후대 성리학자들은 희(喜), 노(怒), 애(愛), 락(樂)을 앞서 말한 칠정을 대표한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희노애락은 단지 네 가지의 감정일 뿐이지만, 그 의미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통합적으로 말한 것으로 앞서 소개한 일곱 가지 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 가지든, 일곱 가지든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주자도 희·노·애·락을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情)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그러한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본성(性)이라고 하였다.(안유경, 203-204쪽)
사단과 칠정은 다 같은 정이지만 차이가 있다. 사단은 순선(純善, 온전하게 선함, 즉 아주 선함)한 것이며, 칠정은 희(喜)·노(怒)·애(愛)·구(懼)·오(惡)·욕(欲)의 감정이 드러나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감정이다.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사단은 ‘리’인데 선하며, 칠정은 ‘기’인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즉 순선한 사단은 리이며,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칠정은 기로 보는 것이다. 주자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체계적인 분석과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학자들 사이에 개념상 논란이 많았다. 이 문제는 조선의 유학자들, 특히 이황을 비롯한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분석에 매진하였으며, 나중에 사단칠정논쟁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한국유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논쟁’(안유경, 205쪽)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 사단칠정론

사단(四端, 네 가지 단서), 즉 측은한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그리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모두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정(情)이다. 칠정(七情)도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일곱 가지 감정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그 출발이 각각 달랐는데, 일단 두 개념이 한자리에 불려 나오자 즉 ‘사단칠정’으로 사용되자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이 발생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기로 한다.(안유경, 266쪽 참조)
추만 정지운(鄭之雲)이 자기 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천명도(天命道)」와 그 해석을 작성하였는데 이것에 사람들에게 유포되어 퇴계 이황이 이를 보게 되었다. 퇴계는 정지운이 ‘사단은 리에서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동한 것이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고치도록 제안하였다. 이렇게 제안한 근거는 주자가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주자어류』「맹자3」)라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임옥균, 129쪽 참조)
정지운은 결국 퇴계의 제안에 따라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라고 바꿨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게 대립적이고 분별의 느낌이 강하여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되었다.
이후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사이에서 그러한 문구를 두고 다시 논쟁이 일어났다. 기대승은 이전에 퇴계가 “사단은 리가 발현한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칠정 이 외에 달리 또 사단이라는 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칠정이나 사단이나 모두 인간의 감정(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구분했던 것이다. 퇴계의 생각은 사단은 리에서 나오고 칠정은 기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퇴계는 기대승의 반론을 듣고 앞서 한 말을 이렇게 바꾸었다.

“사단은 리가 발현하는데 기가 거기에 따른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현하는데 리가 거기에 편승한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이 말은 퇴계가 전에 한 주장, 즉 ‘사단은 리의 발현이요, 칠정은 기의 발현이다’고 한 말보다는 덜 극단적인 것이었다. 사단은 리가 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기가 따라 온다는 것이다. 칠정은 역시 기가 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리가 거기에 탄 것이라고 하였다. 리기 어느 한쪽을 배제하지 않고 리와 기를 모두 언급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제시했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퇴계가 물러서지 않았던 것은 리도 발현하는 존재이고 기도 발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라고 한다.
율곡은 기대승의 주장을 지지하고 퇴계의 주장은 반대하였다.

“마음과 본성(性)을 두 가지 서로 다른 작용으로 생각하고, 사단과 칠정을 역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감정(情)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리와 기에 대해서 투철하지 못한 까닭이다. 대체로 감정(情)이 발동할 때, 발동하는 것은 기이고, 발동하는 까닭은 리이다. 기가 아니면 발동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동할 까닭이 없으니, 리와 기는 섞여서 원래부터 서로 떠나지 못한다.(중략) 리란 태극이고, 기란 음양인데, 태극과 음양이 서로 움직인다고 하면(즉 리기 호발(互發)을 의미-역자주) 말이 되지 않다. 태극과 음양이 서로 움직일 수 없는데, 리와 기가 서로 발동한다는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성학집요』「수기」)

율곡은 퇴계가 리와 기에 대해서 좀 더 철저하게 분석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면서 오직 기(氣)만이 발동(발현)할 수 있으며 리는 발동할 수 없다고 보았다. 리는 다만 스스로 발동은 못하지만 기에 편승하여 기와 함께 움직인다고 주장하였다.
또 율곡은 칠정은 기가 발현된 감정으로, 사단이 칠정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칠정은 사단을 겸하며, 사단은 칠정을 겸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그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관계와도 같다고 하였는데,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하지 않고 말한 것이며,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한 것이라고 하였다. 기질지성이 본연지성을 포함한다는 논리다.
이후 사단칠정에 관한 논의는 더욱더 널리 알려지게 되고, 확대되었는데, 이 논의는 사단칠정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기론 나아가 정치 사회적인 논의로 확장되었다. 논쟁자들은 주리학파, 주기학파로 나뉘었으며 이에 기반한 두 유형의 대립적인 사고방식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이동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