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발기승과 기발이승

7. 이발기승과 기발이승

 

이발기승(理發氣乘)에서 ‘이발(理發)’은 ‘리가 발(發)하면’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한자어 ‘발(發)’이라는 말은 ‘발생하다’, ‘출발하다’, ‘발전하다’, ‘발동하다’, ‘발현하다’, ‘떠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가장 가까운 뜻은 ‘발현하다’, 혹은 ‘발동하다’라는 말로 ‘리가 발현하면’, 혹은 ‘리가 발동하면’이라는 뜻이다. ‘기승(氣乘)’에서 ‘승(乘)’이란 ‘타다’, ‘승차하다’, ‘편승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가 (거기에) 탄다(乘)’, 혹은 ‘기가 (거기에, 즉 ‘리’에) 편승(便乘)한다’는 뜻이다.
기발이승(氣發理乘)은 ‘이발 기승’과 반대되는 말로 ‘기발(氣發)’ 즉 ‘기가 발하면’, ‘기가 발동하면’이라는 뜻이다. ‘이승(理乘)’이란 ‘리가 거기에 편승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개념은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에서 시작되었다.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해석한 것이다. 그는 정지운(鄭之雲, 1509년~1561년, 호는 추만秋巒)이 ‘사단발어리(四端發於理, 사단은 리에서 발현하며), 칠정발어기(七情發於氣,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라고 한 것을 고쳐서 ‘사단리지발(四端理之發, 사단은 리의 발현이며), 칠정기지발(七情氣之發, 칠정은 기의 발현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년~1572년)을 비롯한 당시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송석구, 145쪽) 나중에 퇴계는 이것을 발전시켜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사단리발이기수지(四端理發而氣隨之, 사단은 리가 발현하여 기가 그것을 따르며), 칠정기발이리승지(七情氣發而理乘之, 칠정은 기가 발현하여 리가 그것을 편승한다)’라고 하였다.
퇴계는 ‘이발기승(理發氣乘, 리가 발하면 기가 편승한다)’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이발기수(理發而氣隨, 리가 발하면 기가 따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나 의미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뒤에 나오는 말이 ‘기발이이승(氣發而理乘)’이기 때문에 아마도 퇴계는 글자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기승(氣乘)’ 대신이 기수(氣隨)라는 말을 사용한 것 같다.
이동희는 이 점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한 바 있다.

“(퇴계는) ‘수(隨)’자와 ‘승(乘)’자를 대치시켜 은연중 리(理)를 강조하려는 생각을 표현하게 되어, 결국 존재론적 개념인 리·기의 개념에 혼란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이동희, 1995)

한편, ‘사단은 리에서 발현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는 이러한 논의는 중국철학에서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으로(안유경, 266쪽) 우리나라 유학 사상사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율곡은 ‘기발이승’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기가 발동하면 리가 편승한다(氣發理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다음과 같다. 음이 고요하고 양이 움직이는 것은 기(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고,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이 움직이면 리가 움직임에 편승하는 것이고, 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음이 고요하면 리가 고요함에 편승하는 것이지, 리가 고요한 것이 아니다.”(『율곡전서』「답성호원」)

율곡은 퇴계가 ‘리’를 중시하여 ‘리도 발동할 수 있다’(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는 입장을 비판하며, 위와 같은 ‘기발이승’의 주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