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군자와 성인

3. 군자와 성인

 

가. 군자

‘군자(君子)’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군자란 1)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 2) 마음이 착하고 무던한 사람, 3)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군자는 또 ‘소인(小人)’과는 구분이 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군자와 소인은 서로 대응되는 존재이다. 그러면 ‘소인’은 어떤 사람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소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말한다.

1) 예전에,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던 말
2) 나이가 어린 사람
3) 키나 몸집이 작은 사람
4)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

이중에 1, 2, 3은 군자와 대응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군자에 대응이 되는 소인은 4의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이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다. 군자이면서 소인이 될 수는 없다. 군자는 소인이 아니고, 소인은 또 군자가 아니다.
고대 중국에서 ‘군자’에 대한 논의나 군자에 대한 의미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모은 『논어』에 많이 나타난다.
『논어』에서 ‘군자’라는 말은 모두 107차례나 나타나는데 거의 대부분이 도덕적으로 ‘인격(人格)’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인격’이란 사람의 품격이나 자격을 말한다. 도덕적 인격이란 덕을 행하는 사람다운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공자는 또 ‘군자’라는 말 대신에 그것을 ‘성인(聖)’이나 ‘현인(賢)’으로 지칭하기도 하고 대인(大人), 성인(成人), 선자(善者), 인자(仁者)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소인’과 대조하면서 설명하기도 하였다.(이경무, 105)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상세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군자는 개인의 인격 완성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면서, 이를 위한 실천과 수양에 힘쓰는 사람이다.
2) 군자는 자신의 인격 완성으로부터 나아가 조화로운 인간관계 및 공동체의 건강성을 실현 또는 증진하고자 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자세와 태도를 확립하는 사람이다.
3) 군자는 우주 자연에 대한 체득을 지향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조화를 추구하면서, 인간과 자연‧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군자론은 이경무가 그의 연구논문 「군자와 공자의 이상적 인간상」에서 주로 『논어』에 제시된 공자의 군자에 대한 인식을 정리한 것이다.(이경무, 105-111)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군자란 1) 인격 완성과 자아실현 추구, 2) 실천과 수양 중시, 3) 조화로운 인간관계의 도모, 4) 공동체의 건강성 추구, 5) 우주 자연에 대한 체득 지향 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군자는 통치 계급의 세습 귀족을 호칭하는 말로 사용되다 일반적으로 통치자, 혹은 지배층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 말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소인(小人)이 있었는데 이 말은 피지배층을 의미했다. 하지만 공자는 ‘군자’라는 개념을 바꿔서 ‘인격자’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며, 배움을 추구하는 모든 이, 혹은 덕이 있는 자를 군자로 부르기도 하였다. 아울러 소인은 서민이나 피지배층의 개념에서 인간적으로 졸렬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이경무, 111)

나. 성인

‘성인(聖人)’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로 사용된다.

1)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
2) 순교자나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은 사람 가운데 그 덕행이 뛰어나 공경을 받을 만하다고 교황청에서 특별한 심의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선포한 사람

2번의 ‘성인’은 카톨릭 교단에서 말하는 성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성인의 의미을 살펴보면 1) 덕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 2) 사리에 정통한 사람, 3) 모든 사람이 우러러 받드는 사람, 4)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보면 그가 말한 성인은 다음과 같다.
1)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 온갖 일을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주로 하여 사람의 표준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
2) 성인(聖人)은 천지와 덕을 함께하고(聖人與天地合其德)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함께하고(日月合其明)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함께하며(四時合其序) 귀신과 그 길함과 흉함을 함께 한다.(鬼神合其吉凶)

여기서 말하는 ‘성인’이란 존재는 어떤 것인가? 상당히 신비스러운 존재로 묘사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중(中)·정(正)·인(仁)·의(義)로 온갖 일을 안정키는 사람
2) 고요함을 주로 하여 사람의 표준을 세운 자
3) 천지와 덕을 함께한 자
4)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함께한 자
5)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함께한 자
6) 귀신과 그 길함과 흉함을 함께한 자

주돈이는 이러한 성인 외에 군자와 소인을 따로 언급하고 있어, 성인은 인간들 중에 매우 특별한 존재로 정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존재로서의 ‘성인’은 인간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며, 어떠한 존재일까? 미조구치 유조 등이 지은 『중국문화사전』을 보면 성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미조구치, 187)

1) 인간으로서 최고의 존재다.
2) 종교성을 내포한다.
3) 지극히 뛰어난 인간이다.
4) 이상적인 군주이다.
5)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이다.
6) 인격적인 완성자이다.
7) 천지의 도와 일체가 된 인물이다.
8) 문화의 창출자이다.
9) 높은 덕을 지닌 종교가이다.

성인을 나타내는 글자인 ‘성(聖)’자는 그 뜻이 ‘성인’, 혹은 ‘성스러운’의 의미다. 이 글자는 은나라 시대 갑골문에도 나타난다.

갑골문에 보이는 성(聖)

 

위에 보이는 그림 문자(갑골문)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유독 귀가 크다. 왼쪽 아래는 입(口)을 표현한 글자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을 그림 문자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성인(聖)’은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간 상고시대에는 야수의 발자국 소리를 조심스럽게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대가 더 진화하면서 신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사람을 표현하는 한자 ‘성’이란 글자는 나중에는 그 뜻이 확장되어 ‘평범한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 ‘사회를 복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인류의 문명에 크게 공헌한 사람’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이경무, 113)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성인’이란 명칭은 일반화되었으며 또 다시 다양한 의미가 추가되었다.
공자는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도덕 인격으로 바로 이 ‘성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군자’라 불렀다. 성인이라는 말은 『논어』에서 처음 등장한다.(미조구치, 188)
『논어』 술이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성인을 나는 만날 수 없구나. 군자라도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聖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君子者, 斯可矣)”(『논어』술이)

이 문장을 보면 성인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왜 만날 수 없을까? 이미 사망하여 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성인은 옛 시대에 태어나 활동하던 위대한 인물을 가리킨다. 군자는 어떤가? 공자가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공자가 생각하는 성인은 신화속의 인물인 요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역사상의 인물인 백이(伯夷)와 이윤(伊尹) 등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만나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나중에 공자 제자들은 공자를 역시 ‘성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인에는 ‘처음부터 천하를 통치하는 권력자’라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고 통치자가 아니면 성인이 아니었다. 공자는 최고 통치자가 아니었으나 성인으로 추종된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공자의 이미지가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라는 호칭에서 ‘자(子)’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그가 ‘성인’이기 때문이다. 공자 이후 중국의 황제들은 공자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를 성인으로 추앙하기도 하고 ‘대성지성 하는 시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대성지성문선왕’이란 시호는 원나라 무종이 내린 시호인데 16번째로 공자가 받은 시호였다. 거기에는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지극한 성인 문선왕(至聖文宣王)’이란 글자가 들어 있다.
『논어』 술이편에는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서술을 하지만 짓지는 않는다. 옛것을 좋아하여 믿고 좋아한다. 몰래 나를 노팽과 비교해본다.(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술(述)은 ‘지을 술’이다. 그 뜻은 짓다, 글로 표현하다, 말하다, 설명하다, 해석하다, 잇다, 좇다 등 다양하다. ‘작(作)’은 짓다, 만들다, 일으키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술이부작’은 ‘만들지만 짓지 않는다’, ‘전해주기는 하지만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송나라 때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술이부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술(術)은 옛것을 전하는 것이고, 작(作)은 처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作)은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술(述)은 현자도 할 수 있는 것이다.(述, 傳舊而已. 作, 則創始也. 故作非聖人不能, 而述則賢者可及.)”(『논어집주』술이편)

이러한 성인의 개념은 성리학이 나타나면서 성인의 개념이 철학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의 개념은 그대로 전승되었으니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소위 성인 개념의 중층화,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앞서 소개한 『태극도설』의 저자 주돈이는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성인은 보통사람들이 잘 배워서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인가?”(『통학』‧「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

그는 공자보다 먼저 죽은 공자의 제자 안회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다. 안회는 어떤 관직도 없었으며 공자처럼 선왕(先王)의 도를 전한 공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그를 높게 평가하였으며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높고, 바람직한 수준의 학문에 도달했다. 결국 주돈이는 모든 사람들은 학문과 수양을 거쳐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미조구치, 193)
사실 송나라 시대에는 주돈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그 시대 유학자들, 즉 도학자들은 이러한 관념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으며, 배움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도학파들의 핵심적인 사상이었다.(미조구치, 193)

그러므로 다시 『태극도설』로 돌아가서 주돈이가 “성인(聖人)은 중(中)·정(正)·인(仁)·의(義)로 온갖 일을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주장하여 사람의 표준을 세웠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덕을 함께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함께하고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함께하며 귀신과 그 길함과 흉함을 함께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미 사망한 고대의 이상적인 인간을 말하기도 하지만 현세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돈이의 사상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에게 전해져 성리학 사상의 중요한 이론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주자학자들에게 중요하게 되었을까? 송나라 이전의 시대는 중국에서 당나라 시대에 해당된다. 한나라 이후 위진남북조, 수나라, 당나라 시대는 불교의 시대였다. 이 시대의 특징은 또 분열과 혼란의 시대였다. 한나라 후기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염세적인 풍토가 전국에 퍼져나가고 전국의 젊은이들은 불교사찰로 몰려들었다. 불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공(空)이며 이 허무한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운명, 즉 윤회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을 해야한다고 호소하였다. 북송의 유학자들은 중국 사회가 혼란한 원인 중 하나는 불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대응하는 사상을 모색하고 있었다.
불교의 『열반경』은 모든 것은 불성(佛性,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축도생(竺道生, ?~434)의 ‘불성당유론(佛性當有論)’이나 ‘실개성불론(悉皆成佛論)’은 유명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깨달으면 곧 부처다.
2) 불성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3) 극악한 성질을 가진 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나라 중엽 선종이 퍼지면서 민중 속으로 더욱 널리 전해졌다.(미조구치, 194) 여기에서 유학자들이 말한 ‘배우면 성인도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만 주자학자들은 보통 사람들도 모두 성인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지속적인 배움과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뒤에 등장한 양명학자들은 ‘누구나 성인이다’고 주장하면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 안에 ‘성인이 될 수 있는 본성(聖性)’이 담겨있다고 보았다. 결국 성인은 고대의 신적인 존재에서 양명학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성인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보통사람들도 성인이 되는, 개념상의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