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즉리와 심즉리

10. 성즉리와 심즉리

 

가. 성즉리

‘성즉리(性卽理)’는 ‘본성(性)은 곧 리다’는 뜻이며, ‘심즉리(心卽理)’는 ‘마음은 곧 리다’는 뜻이다. 전자는 성리학의 대전제이며, 후자는 양명학의 대전제이다.
‘성즉리’를 맨 처음 말한 사람은 북송의 정이(程頤, 1033년~1107년, 호는 이천伊川)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형 정호(程顥, 1032년~1085년, 호는 명도明道)와 더불어 성리학이 형성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은 두 형제를 함께 모아 이정(二程)이라 부른다.
정이는 “본성은 곧 리다.(性卽理也)”라고 하였다.(이하 『이정전서』권22, 「이천어록」참조) 그러면서 그는 “천하에 존재하는 리(理, 이치)를 살펴보아 그것이 유래한 바를 더듬어 올라가보면 지금까지 선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天下之理, 原其所自, 未有不善.)”라고 하였다. ‘리’라는 것은 모두 착한 것이고, 그 리가 본성(本性)이라는 것이다. 또 이러한 리는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하나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모두 착하다고 하고, 착하지 않는 점이 있는 것은 인간의 ‘재(才)’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재(才)라는 단어는 재주 또는 재능, 솜씨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에는 악한 재능, 악한 재주, 악한 솜씨가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남송 시대(南宋時代, 1127년~1279년)에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정이의 ‘성즉리’ 사상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성은 리이다.(性卽理也) 마음에 있는 것은 본성이라 부르고(在心喚做性), 모든 사물에 있는 것은 리라고 부른다(在事喚做理)”(『주자어류』상 제5권)

주자는 리를 마음의 리와 사물의 리로 나누어 정의하였다. 이원론적인 설명이다. 그는 마음의 리는 본성(性)이고 사물의 것은 ‘리’이다. 그는 마음에 있는 리, 즉 본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주자대전』「옥산강의」 참고)

하늘이 만물을 만들어 낼 때 각각 모든 만물에 본성을 부여하였다. 여기서 만물이란 사람과 사물로 나눌 수 있는데, 주자가 지금 말하는 것은 사람을 특히 주목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에 담겨 있는 리이다. 마음 안에 내재한 리가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리를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어짐(仁), 의로움(義), 예의(禮), 지혜(智), 믿음(信)이다. 이것들은 모두 진실무망(眞實無妄), 즉 진실하며, 거짓됨이 없는 마음들이다.
여기서 어짐(仁), 의로움(義), 예의(禮), 지혜(智) 즉 ‘인·의·예·지’는 모두 ‘리’지만 거기에는 또 각각 구별이 있다. 이러한 마음의 본성은 아직 발동하지 않을 때, 즉 아직 작용하지 않을 때(未發時)에는 겉으로 나타나는 형상은 없지만 그것이 발동하면 어짐은 측은한 마음으로 나타나고, 의로움은 부끄러움으로 나타나고, 예의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타나며 지혜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인·의·예·지 가운데에는 또 두 가지 큰 구분이 있다. 인(어짐)과 의(의리)가 그것이다. 인과 의는 자연에서의 음(陰)과 양(陽)이라고 하는 두 개의 기(氣)와 같다. 이 두 개의 기는 유행하게 되면 사계절의 순환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역할을 인과 의가 인간의 본성에서 작용을 한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인의예지는 ‘인’과 ‘의’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은 인이라는 한 글자로 집약된다. 인의예지 네 가지 본성의 구별은 명확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 간에 구별이 전혀 되지 않기도 한다. 구별이 있으나 구별이 없고, 구별이 없으나 구별이 있다. 이것이 주자가 말한 본성의 논리다.(『주자어류』하, 「석씨」)
주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한다. 텅빈 것이라는 공(空)의 개념은 불교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적용이 된다. 주자는 인간의 본성을 주목하여 그러한 ‘공’이 사실은 텅빈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실재(實, 가득 참)’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본성의 본체인 리가 인의예지라는 형식으로 실재하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하마, 198)

인간의 본성(性)에 대한 논의는 고대부터 있었다. 그중에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주장이다. 송나라 주자 학자들은 맹자의 이 성선설을 기본으로 받아들였다.
맹자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즉 선(善)한 마음의 맹아를 생득적(선천적으로, 즉 태어나면서 획득하여)으로 갖추고 태어난다. 그것을 우리는 잘 키워야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우리 삶에는 많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방해 요인을 억제하고 제거하여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
맹자가 말한 착한 마음의 맹아, 즉 실마리는 바로 사단(四端, 네 가지 실마리),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한다. 그것은 또 양심(良心)이라고도 한다. 맹자는 이러한 착한 마음의 실마리를 잘 키우면 인의예지의 덕을 갖춘 이상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주자는 이러한 맹자의 성선설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맹자와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즉 주자는 인간에게 인의예지신의 리가 선천적으로 갖추어졌고, 그것이 기로서 현상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감정(情)이라고 설명한 것이다.(미조구치, 상141)

나. 심즉리

명나라 시대 중엽 왕수인(王守仁, 1472~1528, 호는 양명陽明)은 주자학의 대명제인 ‘성즉리(性卽理, 본성은 즉 리이다)’를 바꿔서 ‘심즉리(마음이 곧 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는 『전습록』으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문답집이다. 그는 ‘본성’을 ‘마음’으로 바꿈으로써 사상적인 대전환을 이루고 명나라 시대의 새로운 학문인 양명학(陽明學)을 구축하고 심학(心學)을 일으켰다. ‘심학’, 즉 ‘마음의 학문’이라는 말은 그의 ‘심즉리’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심학은 ‘왕학(왕수인의 학문)’이라고도 한다. 주자학인 이학(理學), 정주학(程朱學)에 대응한 호칭이다.
심즉리의 사상은 왕수인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남송시대에 육구연(陸九淵, 1139년~1192년, 호는 상산象山)이라는 사상가가 제창하였다. 왕수인은 이러한 육구연의 사상을 받아들여 주자학, 즉 성리학에 대응하는 사상체계를 세웠다. 주자학은 중국사회에서 관료나 사대부층이 주로 수용하였으나 양명학은 일반의 서민층에도 널리 퍼졌다. 이 덕분에 유교의 가르침이 강학활동 등을 통해 민중사회 깊숙한 곳까지 전해지는 효과가 있었다.(미조구치, 724)
주자학은 자기 앞에 놓인 사물의 리를 잘 관찰하여 그것을 파악하는 것을 실천의 과제로 삼는다. 그러나 양명학은 내 마음 안에 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심즉리(마음은 즉 리)’라는 사상이다. 왕수인은 그의 저서 『전습록』에서 천하에서 마음 바깥에 있는 리는 없다, 마음 바깥에 사물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리를 갖춘 마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에 서서 살아갈 것을 제창하였다. 따라서 양명학에서 권장하는 수양의 방법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외향적, 실천적으로 살아갈 것을 주장하였다.(미조구치, 72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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