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연과 송석구의 저술 비교2 – 저작 의도와 주장

#8. 황준연과 송석구의 저술 비교2 – 저작 의도와 주장

3.4 저자는 왜 이 책을 썼는가?

황준연의 『율곡철학의 이해』는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 『율곡의 철학사상에 관한 연구: 『성학집요』를 중심으로』)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인데,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다. 체계도 일부 바꾸고 용어를 읽기 쉽게 수정하였으며 일부 내용, 예를 들어 유교의 학문관, 율곡의 생애, 그리고 율곡 사상 형성의 역사적 배경 및 경세 사상 등은 추가로 보완했다고 한다.(5쪽)
저자는 이 책을 내놓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율곡이 생각하는 학문이란 문자를 배워서 일상생활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능력을 길러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미사어구만을 자랑하는 현학적인 ‘말놀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학문을 통하여 철저히 실질적인 효과가 있기를 소망하였다. 이와 같은 율곡의 정신을 이 시대에 계승하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생각이고, 또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4쪽)
율곡에 대해서 실천을 전제로 한 학문을 추구했던 인물로 소개하고 그러한 실천 정신을 이 시대에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이 책의 저술 동기라고 한다.
저자는 「지은이의 말」에서 율곡의 철학 이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도 피력하였다.
“율곡의 이론은 당시 우리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으며, 그의 주장은(취사선택이 필요한 일이지만)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적실(的實, 틀림없이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주장 속에는 이 시대의 어떤 개혁주의자보다도 더욱 절실한 개혁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고도한 철학성과 함께 언어의 차원을 넘어서는 실천성을 수반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 율곡의 사상에는 현대의 어떠한 개혁주의자보다도 더 절실한 개혁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또한 거기에는 고도의 철학성과 실천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율곡의 사상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율곡의 저서는 한문으로 이루어 졌다. 이 점에 대해서 황준연은 율곡의 한문은 중국인의 한문, 즉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인의 한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유럽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도 라틴어로 글을 썼지만 네덜란드의 학문적인 업적으로 평가를 받는다고 소개하였다. 아울러 율곡의 글은 중국 유교사상의 테두리 안에 있으나 한국인으로서 사유의 독창성이 돋보인다고 주장하고, “시대가 무한 경쟁을 향하여 숨 가쁘게 치닫고 있는 이때에, 이제는 우리 것(國學)을 개발하여 세계에 내놓을 때가 아닐까? 가령 어떤 한국인이 칸트의 철학 사상을 연구하여 독일의 전문가와 경쟁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시대는 학문의 수입 차원을 넘어서 우리 것의 수출을 요구하는 때로 접어들고 있으며, 지성인들의 각성이 크게 요구되는 때이다”(3쪽)라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국립 동양학대학에서 2년간 한국어 및 한국 사상을 강의한 바 있으며, 중국 산동(山東) 사회과학원 유학연구소 객원교수, 중국 섬서(陝西)사범대학 중국사상문화연구소 방문학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Berkeley) 중국학연구소 방문학자 등 자격으로 해외 학술계 방문 경험이 적지 않다. 또 그는 영문 공저로 Reader in Korean Religion(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1993)을 출판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황준연은 율곡의 철학사상이 바로 그러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한편 송석구 저 『율곡의 철학사상』은 어떤 계기로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저자는 율곡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불교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다. 그의 저서 중에는 앞서 소개하였듯이 『한국의 유불사상』(1997), 『불교와 유교』(1993) 등 불교 관련 서적도 있다. 그리고 그는 불교를 중시하는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머리말에서 그는 율곡에게 ‘이상한 매력’을 느껴왔다면서 다음과 같이 율곡에 대해서 소개했다.(7-8쪽)

율곡은 철저한 유가출신이면서 금강산에 들어가 불경을 읽고 어렵다는 선수행(禪修行)을 하였다. 율곡이 어느 스님(僧)과의 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소리개가 날아 하늘에 오르고, 불고기가 못에서 뛰어 노는 것은 색(色)이냐 공(空)이냐?”
스님이 대답했다.
“비색(非色), 비공(非空)은 진여체(眞如體)다. 어찌 이 시에 비할 수 있겠느냐”
율곡이 응답했다.
“이미 언설이 있었으니 바로 경계(境界)다. 어찌 체(體)라고 하겠느냐? 만일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妙處)는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이요. 불씨의 도는 문자 밖에 있지 않는 것이다.”
이상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더욱 율곡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율곡에게 빠져든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자 송석구는 또 율곡이 어떤 성리학자들 보다 ‘입지(立志, 뜻을 세움)’를 중시했고 입지가 바로 서야 모든 일이 성실하게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였다는 점도 지적하였다.(8쪽) 율곡이 말하는 입지란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말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불교식으로 풀이하자면 ‘발원(發願)’이며 ‘부처’가 되겠다는 의미이다. 율곡의 많은 사상 중에서 이러한 점을 주목한 것은 역시 불교도로서 율곡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다른 종교를 넘나든 경험이 없기에 나는 불교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속에 살았다는 뜻은 나의 팔십 평생의 역사 속에 명멸되었던 슬픔과 기쁨, 고뇌와 좌절, 성공과 실패가 모두 불교의 믿음에 의존해서 극복되었기 때문이다.”(<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2020.12.03.)
이렇듯 불교에 대한 깊은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유학자 율곡의 철학을 깊이 연구 했는데, 그 계기가 율곡의 불교도적인 모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율곡의 사상적인 진수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원래는 율곡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구상을 하였으나 율곡의 사상만으로 내용이 방대하여 생애 부분은 제외하였다고 한다. 율곡의 생애는 이전에 나온 선행연구로 미루고 자신은 율곡의 철학사상에 집중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또 ‘철학사상’이라고 책 이름을 붙인 것은 순수한 성리학설과 그에 따른 윤리학설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 율곡이 “주기적(主氣的)이면서 성리(性理)의 의리적(義理的) 측면을 어떻게 수기(修己)에서 적용되었는가를 해명하고자 하였다”고 한다.(9쪽)
송석구의 책 『율곡의 철학사상』은 1984년에 출판되었는데 이보다 2년 뒤인 1986년에 그는 『송석구 교수의 율곡철학 강의』(예문서원, 2016)의 초판서문(1986년 12월 집필)에서 다음과 같이 율곡 철학에 대해서 소개한 바 있다.
“이제부터가 율곡을 통하여 한국적 성리학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첫 단계의 작업의 시작이라고 본다. 율곡성리학의 특성이 그가 정주성리학의 모방이 아니라 그 자신 성리학에 영향을 주었던 불교적 체계에도 이미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착안할 때 한국적 성리학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시사되는 바가 많다고 보인다.”(7쪽)
율곡 철학에 한국적 성리학의 독자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울러 율곡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그러한 특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였다. 참고로 예문서원에서 출판한 『송석구 교수의 율곡철학 강의』는 1984년 중앙일보사에서 출판한 『율곡의 철학사상』과 내용의 거의 동일하다. 다만 목차 구성이 다소 변경되었으며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한자를 대폭 줄이고 어려운 용어를 쉽게 바꿔서 편집한 것이다. 요즘의 젊은 독자들에게 1984년본 『율곡의 철학사상』은 한자와 한문으로 된 원문이 많아 거의 외국서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송석구 교수의 율곡철학 강의』를 읽을 것을 권한다.

3.5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황준연이 『율곡철학의 이해』에서 주장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보기로 한다.

1) 율곡에게 성학(聖學)의 의미는?
2)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의 비교
3) 율곡은 학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4) 율곡의 태극론은?
5) 율곡의 이기론
6) 율곡의 사단 칠정론
7) 율곡의 심성론
8) 정치에 대한 율곡의 기대
9) 율곡이 원하는 사회

1) 율곡에게 성학(聖學)의 의미는?

황준연의 『율곡철학의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학(聖學)’이다. 그는 율곡 철학의 가장 핵심사상으로 바로 이 ‘성학’을 주목하고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성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율곡에게) 학문이란 자기 자신을 닦고 타인을 다스리는 이른바 ‘수기치인’의 방법을 통하여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와 같은 학문은 곧 유교의 특징이며, 이를 ‘성학(聖學)’이라고 부른다.”(18쪽)
율곡도 마찬가지였지만, 유학자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도덕적 수양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고 군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통하여 성숙한 인격을 갖춘 군자는 도를 밝혀서 세상에 봉사하고자 한다. 유학에서는 이를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 표현한다. 즉, ‘내성(內聖)’이란 학문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는 길이며, ‘외왕(外王)’이란 도를 밝혀 세상을 구제하는 길즉, ‘밖으로 제왕(帝王)의 길’을 말한다.(13쪽) 유학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되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닦고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내성외왕’이 제왕의 학문이라면, ‘수기치인’은 군자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14쪽)

2)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의 비교

저자는 제2부 제5장 ‘율곡 성학의 구조와 내용’과 제6장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에 대한 비교 검토’에서 두 성학 관련 저술을 비교하였다. 제5장은 율곡의 『성학집요』를 분석하고, 제6장은 퇴계의 『성학십도』를 분석한 것이다. 이 두 책에 대한 비교 결과는 제6장 제2절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저자는 ‘퇴계의 『성학십도』와 율곡의 『성학집요』는 한국 성리학의 빛나는 업적’이라고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유교의 이상이 ‘수기치인’의 개념으로 대표된다면 퇴계의 『성학십도』는 ‘수기’의 결정본이요, 율곡의 『성학집요』는 ‘수기와 치인’의 총화이다. 그리고 퇴계는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경으로써 그 정신세계를 일관하였으며, 율곡은 ‘경’도 중시하였지만 『중용』의 입장에서 ‘성(誠)’을 보다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퇴계의 『성학십도』가 중국 성리학의 한국적인 수용 또는 소화라고 볼 수 있고, 율곡의 『성학집요』는 중국 유학의 집약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212쪽)
일반적으로 퇴계의 사상이 중국 유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고, 율곡의 사상은 한국적인 입장에서, 즉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었다. 비록 성학 관련 저술의 비교를 통한 결론이지만 퇴계의 사상에 한국적인 해석이 더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3) 율곡은 학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태도를 지적하였다. 하나는 율곡이 학문적인 목표를 ‘성인의 경지(聖域)’에 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40세의 나이에 완성한 『성학집요』라는 저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율곡은 거기에서 성왕(聖王)이 되는 학문을 권장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는 그가 여러 가지 학문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율곡은 불교나 노자 그리고 양명학에 대해서도 ‘일단 선입견을 유보하고,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접근’하였다.(51쪽)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율곡은 학문적 입장에서는 앞선 선비들의 학설을 묵수하는 태도를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고, 자신이 평생 추구하였던 학문의 대상인 주자의 유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대했으며, 여러 학문 분야에 있어서도 편견이 없이 공평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하였다.(58쪽)

4) 율곡의 태극론은?

저자는 율곡의 태극론이 “정이천과 주자의 학설을 좇아서 ‘기(氣)’보다는 ‘이(理)’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보았는데, 다음과 같이 율곡의 견해를 정리하여 제시하였다.(87쪽)
가) 우주의 시원에 있어서 동정(動靜)이전의 기운, 즉 기(氣)란 없다. 다만 이치(理)로서 태극만이 존재한다.
나) 공허하고 광막하여 조짐이 없는 것은 ‘이치’라고 이름할 수 있고, 이것이 음양·동정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5) 율곡의 이기론

먼저 저자는 노사광의 『중국철학사』(제3권, 상, 삼민서국, 1981)에 근거하여 주자의 이기론을 정리하였다. 주자는 리와 기가 ‘존재 자체만의 측면에서 볼 때는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지만, 그 운행의 동작 상태에 있어서는 상호 분리되지 않는 것’(91쪽)이라고 하였는데 율곡은 리와 기가 개념적으로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로 구분된다는 주자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리와 기가 동작이 없는 존재 자체든 혹은 동작이 있는 운행 중이든 간에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 점은 율곡의 이기론이 주자와 다른 점이다.
아울러 율곡은 리기가 “그 존재에 있어서건 혹은 그 동작에 있어서건 두 가지 물건으로 파악하지 않고 ‘서로 떠날 수 없음’(不能相離)을 강조”(91쪽)하였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퇴계가 리와 기가 상호간에 발용한다고 주장한 것(理氣互發說)에 반대하여 율곡은 이기 상호간의 발용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91-92쪽)
저자는 율곡 이기설의 특징으로 이른바 ‘이기지묘(理氣之妙)’를 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주자나 화담(서경덕) 그리고 퇴계 등에 비하여 이기의 절충을 강조하여 그 묘합(妙合)의 논리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불교적인 중도(中道)의 논리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그 근거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고 형상이 있는 현상 세계와 형상이 없는 본체 세계가 서로 통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중도의 세계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율곡의 이기론도 리와 기가 서로 떠나지 않고, 서로 섞이지 않는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중도’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것이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기지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95쪽)
저자는 율곡의 이기론 중에 ‘이통기국(理通氣局)’의 사상에 대해서도 한 절을 설정하여 상세하게 논하였다. 그는 ‘이통기국’의 사상에 대해서 율곡이 스스로 ‘독창적’인 것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언어 표현상의 독창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주자가 이미 ‘리는 같고 기는 다르다(理同氣異)’라는 유사한 표현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 율곡의 사단 칠정론

퇴계는 사단과 칠정은 각기 그 유래하는 바가 있는데, 사단은 ‘리’에서, 칠정은 ‘기’에서 각각 발동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율곡은 퇴계의 학설을 거부하고 칠정 안에 사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는 퇴계와 사단칠정과 관련된 논변을 하였던 고봉의 주장이었다. 율곡은 고봉의 주장을 수용하여 사단 칠정의 문제를 집대성하였다.(111쪽)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율곡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가 집대성될 수 있었던 것은 1) 율곡이 유달리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며, 2) 시대적으로 퇴계와 고봉의 다음에 나와서 두 학자의 학설을 충분하게 검토할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7) 율곡의 심성론

사람의 마음(心)과 본성(性)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제4장 제4절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고 다음과 같이 간략히 율곡의 심성론에 관한 기본 입장을 정리하였다.
“(율곡의) 심성론이 문제는 마음(心), 본성(性), 정(情), 뜻(意)의 관계와 인심(人心), 도심(道心)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들 개념은 모두 동양철학의 인성론이 우주론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만큼, 당연히 ‘이기’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112쪽)
율곡의 심성론도 바로 율곡이 주장하는 이기론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율곡의 심성론을 『성학집요』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마음의 본체(心之體)는 본성(性)이요, 마음의 작용(心之用)은 정(情)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는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후자는 이미 마음이 발동하여 나타난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마음은 본성, 정, 뜻의 주인이 되는 것이니, 마음을 발동한다고 말할 때는 ‘기(氣)’를 가리키는 것이며, 발동하게 하는 까닭은 곧 ‘리(理)’ 때문이다”(114쪽)
아울러 저자는 율곡의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에 대해서 먼저 퇴계의 이론과 다소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율곡은 사단이 도심인 것은 가하나 칠정은 인심 도심을 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0쪽)고 지적하였다. 퇴계는 인심은 칠정이 되고, 도심은 사단이 된다고 하였다.

8) 정치에 대한 율곡의 기대

저자는 제8장 제1절에서 정치에 대한 율곡의 기대에 대해서 두 가지 사항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하나는 1) ‘시대파악’이며 다른 하나는 2) ‘여론을 중시함’이다. 여기에서 시대파악이란 율곡이 파악한 당시 시대상을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한마디로 일대 개혁, 즉 경장(更張)이 필요한 때라고 보았다. 그가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그 시대가 이른바 ‘해묵은 집’이나 ‘기운이 다해버린 노인’과 같은 상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226쪽)
즉, 그는 자신의 시대가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철저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아울러 ‘개혁’이야 말고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인식 내용은 그의 『동호문답』이나 『만언봉사』 그리고 각종 상소문에 잘 제시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여론, 즉 언로의 개방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주장은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비판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현명한 임금은 백성의 귀를 자신의 귀로 삼고, 백성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삼아서 잘 듣고 잘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31쪽) 이와 같이 언로를 열어서 좋은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민의를 수렴하여 국정에 반영하여야 좋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에 따르면 정치에 대한 율곡의 기대는 “왕도 정치의 실현이라는 대전제를 그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현실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그에 따른 언로의 확충을 필수 조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이 확보될 때 비로소 각종의 시책이 효과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232쪽)이기 때문이었다.

9) 율곡이 원하는 사회

결국 율곡이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율곡은 1) 기강이 확립된 사회이며, 2) 평등이 확보된 사회였다.
당시 율곡이 처했던 사회는 권세 있는 간사한 신하들이 나라를 버려놓았으며, 선비들은 기운이 꺾인 채로 입을 다물고 살아가는 상태였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 및 정치 현실이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율곡은 왕을 중심으로 기강이 확립된 사회를 희망하였다.(237쪽)
그리고 저자는 율곡이 사람을 쓰되 ‘그 출신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신분 제도에 따라서 출세 길을 달리하던 당시 사회에서 율곡의 이와 같은 주장은 매우 혁신적이며, 동시에 그가 바람직한 사회란 평등이 확보된 사회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현대적인 평등 관념과 완전히 일치된 주장은 아니나, 저자는 “그 시대에는 이와 같은 평등 의식의 소유자마저 드물었다는 점에서 그의 선구자적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240쪽)

한편 송석구 저 『율곡의 철학사상』은 율곡 철학에 대해서 1) 태극론, 2) 이기론, 3) 심성론, 4) 실천론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여기에서는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 태극론, 이기론, 심성론 부분에서 저자가 율곡 철학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하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 태극론

저자가 소개하는 율곡의 태극론은 앞서 살펴보았던 황준연의 주장과는 다소 다르다. 황준연은 율곡의 태극론이 ‘기(氣)’보다는 ‘이(理)’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보고, 우주가 처음 시작한 때, 즉 동정(動靜)이전에 리(理)로서 태극만이 존재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송석구는 율곡의 태극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가. 율곡의 인식에 따르면, 『주역』 계사전의 ‘태극이 양의(음양)을 낳았다(太極生兩儀)’는 말은 마치 태극에서 음양이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태극에서 음양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음양은 본래 있는 것이다.(11쪽) 즉 그것이 어느 때에 생겨한 것이 아니다. 즉, 기와 리가 함께 있었다.(24쪽)

나. 태극과 음양은 본래부터 함께 있는 것이기 음양이 없는데 태극이 홀로 있을 수 없다. 태극이 있으면 음양이 이미 있으며 거기에 항상 태극이 있음으로 태극이나 음양이 독립적으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다.(12쪽)

다. 율곡의 태극론은 기만 존재하는 ‘형이하(形而下)’에 떨어지지 않았고, 또 태극이 음양을 떠나 있다는 ‘리’ 유일론에도 떨어지지 않았다.(17쪽) 즉 그는 화담 서경덕의 기일원론과 정이천과 주자 그리고 퇴계의 주리적 태극론을 극복하여 두 사상의 조화를 꾀하였다.(27쪽) 황준연의 경우는 율곡의 태극론에서 리를 강조하였는데, 송석구는 율곡의 태극론 가운데 리와 기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2) 이기론

저자는 제2장에서 이기론을 논하면서 장 제목으로 ‘이기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접근이란 율곡이 기존의 ‘기’일원론 혹은 ‘리’일원론을 지양하고 이기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율곡의 이기론을 정리하였다.

가. 율곡은 퇴계의 이발기발(理發氣發, 리도 발동하고 기도 발동한다)설에 대해서는 기발리승(氣發理乘, 기가 발동하면 리가 거기에 편승한다)으로, 화담의 ‘담일청허의 기’(湛一淸虛의 氣, 맑고 깊으면서 비어 있는 듯하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기)에 대해서는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로 극복 조화하려 하였다.(43쪽)

나. 후대 사람들은 율곡이 퇴계의 이발설을 반대하고 화담의 용어를 차용하였으며, 기발리승을 주장한 것 때문에 그를 주기론자라는 궁핍한 별명을 붙이고, 한국유학이 주기, 주리론으로 나뉘어 숱한 갈등과 학적 토론을 자아내게 한 장본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율곡은 기를 앞세운 기일원론자가 아니다. 그는 리를 말할 때나 기를 말할 때나 언제나 이기는 혼륜(渾淪, 사물의 분별이 뚜렷하지 않음), 무간(無間, 틈이 없음)하다고 말하였고, 무형무위(無形無爲, 형태도 없고 행위도 없음)의 리가 유형유위(有形有爲, 형태도 있고 행위도 있음)의 기의 주체가 된다고도 하였다.(43쪽)

다. 율곡의 이통기국(理通氣局)은 임성주(鹿門 任聖周, 1711~1788)에 의하여 유기론(唯氣論)의 측면에서 기일분수(氣一分殊)의 측면으로 다루어졌고, 기정진(蘆沙 奇正鎭, 1798~1879)에 의해서 유리적(唯理的) 측면에서 이일분수(理一分殊)로 다루어졌다. 이렇게 보면 율곡은 퇴계의 이발과 하담의 기일원론을 종합하여 이통기국론을 창안함으로써 앞의 두 학자들보다 2백년 앞서 유기적(唯氣的), 유리적(唯理的) 양면을 종합한 것이다.(78쪽)

라. 율곡은 화담과 퇴계의 학문을 종합하려 하였다. 그는 화담이 주장한 기의 능동성과 활동성을 충분히 통찰하고, 기의 사실성과 실재성을 깊이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를 궁극적인 보편적 존재로 파악한다든가 기일원론적 입장에 서지는 않았다. 퇴계의 ‘이발’설에 대해서도 반대하여 리의 무위성(無爲性)을 철저히 강조하였다. 율곡은 이기의 이합(離合)과 선후가 없음을 강조하고, 리는 무위(無爲)요 기는 유위(有爲)이기 때문에 기가 발동하면 리는 거기에 편승한다고 하여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제시하였다.(86-87쪽)

마. 율곡이 제시한 ‘이기지묘’는 그의 성리학 전체 체계에서 일관되어 있다. 이는 모든 사고의 독단성을 화쟁(和諍, 불교의 용어로 각 종파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을 시도하려함)하는 논리가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기지묘의 의의다.(92쪽)

3) 심성론

저자는 율곡의 심성론에 대해서 심·성·정·의의 문제, 사단·칠정의 문제, 분연지성·기질지성의 문제, 그리고 인심·도심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가. 주자는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 보았고, 마음의 본체는 본래 착하지 않음이 없으나 정에 의해서 선악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또 마음의 리는 태극이요, 마음의 동정(動靜)은 음양이라 하였으며, 성(性)은 태극과 같고 마음은 음양과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자의 심성정관(心性情觀)위에 율곡은 ‘의(意)’를 하나 더함으로써 학문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98-99쪽)

나. 율곡은 마음이 지각하는 능력은 기(氣)이지만, 그렇게 하는 까닭은 리라고 하여 리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 없고(理氣不相離), 기가 발하면 리가 이것을 탄다(氣發而理乘)고 보았다.(101쪽)

다. 율곡은 마음이 성정의(性情意)의 주(主)가 됨을 역설하였다. 심과 성(性)이 둘이 아니며, 성(性)과 정(情)이 둘이 아니다. 다만 한마음 속에서 그 기능이 서로 다를 뿐이다. 즉 마음의 리로서 성은 마음의 본체이며, 성의 발(發)으로서 정은 마음의 용(用)이다. 정이 발하여 있는 상태를 계교상량(計較商量, 서로 견주어 따져 보고 살피며, 헤아려서 잘 생각함)하는 것은 의(意)라 한다. 이것은 모두 심성정의 하나이지 서로 다른 ‘이물(二物)’이 아니다.(104쪽)

라. 퇴계는 사단(四端)을 순수한 리로서 선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보고, 칠정(七情)은 기를 겸한 것으로 선악이 있다고 생각했다. 퇴계는 이를 다시 리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는 사상과 결합시켜 사단과 칠정을 별개의 것으로 보았다. 이에 반하여 고봉은 칠정은 정의 전부로서 선악이 있으며, 사단은 칠정 중에서 착한 한쪽이라고 했다. 이것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七情包四端)는 논리다. 사단칠정론에 대한 퇴계와 고봉의 이러한 상이점을 보완한 것이 율곡의 사칠설(四七說)과 기발리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다.(111-112쪽)

마. 율곡이 ‘마음은 기(心是氣)’라든지 ‘기가 발하고 리가 여기에 편승함(氣發理乘)’과 같은 주기적(主氣的)인 주장을 편 것은 인간의 도덕적인 선함을 그대로 열어 밝히려는 데 목적이 있지, 기가 능동적 성질이 있어서 우주와 인생의 근본을 이룬다고 본 것은 결코 아니다. 성즉리(性卽理)로서의 성(性)과 도(道) 또는 본래적인 선함(純善)이 현상계에 나타나느냐, 나타나지 않느냐의 여부는 그것들이 형기(形氣)에 의해서 가려지느냐, 가려지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형기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고 파악하여 본성인 리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율곡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지, 기를 높고 귀하게 보아 그것을 높이는데 있지는 않았다.(123쪽)

바. 율곡은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양쪽으로 나누는 것은 척박한 논리라고 보았다. 그는 기질지리(氣質之理) 안에 본연지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133쪽) 결국 율곡이 ‘본연지성’을 ‘기질지성’에 포함시켜 설명한 의도는 하나의 성(性) 속에 두 개의 성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이 두 성을 조화하여 본연지성을 회복시키려는 데 있었다.(137쪽)

사. 율곡이 주장한 인심도심(人心道心)의 의의는 성의(誠意)를 통하여 도심(道心)을 회복하려는 데 있었다. 인심이라고 하여 모두 사람의 욕심이라고 보고 악이라고 할 수 없으며, 도심이라고 하여 제멋대로 행동하여 사사로운 욕심이 개재되면 도심도 인심으로 결말 지워지는 것이니, 부단하게 성의(誠意)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율곡이 인심을 인간의 욕심이나 악한 것으로 보지 않은 것은 그 당시의 성리학적 풍토에서 볼 때 탁견이 아닐 수 없으며 동시에 율곡이 보여준 근대적 사고의 일면이라고 생각된다.(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