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 기생 유지(柳枝)를 사랑하다

 

(8) 황주 기생 유지(柳枝)를 사랑하다

강민우: 선생님은 밤낮으로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였던 정치가요, 자신을 닦고 학문을 연마하였던 학자였지만, 또한 벗과 어울려 술과 유람을 즐기고 꽃과 자연을 사랑하였던 시인이기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율곡: 저는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취하는 일은 없으나, 반가운 벗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는 운치를 즐깁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꽃에 대해서도 세심한 애정을 보이셨지요.

율곡: 진(晉)나라 때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사랑했던 국화꽃에 애정을 가졌으며, 술잔에 국화꽃잎을 띄우고 지었던 시가 있습니다.

서리 속의 국화를 사랑하기에 爲愛霜中菊,
노란 꽃잎 따서 술잔에 가득 띄웠네. 金英摘滿觴.
맑은 향기 술맛을 돋우고, 淸香添酒味,
수려한 빛깔 시인의 정취를 적셔주네. 秀色潤詩腸. (「泛菊」)

강민우: 서리 속에 핀 국화를 보면서 국화의 꽃잎을 술잔에 담아 함께 마시다가, 국화꽃의 맑은 향기에 도취되어 시적인 정취가 솟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율곡: 저는 도연명이 국화 꽃잎을 따며 읊었던 시나, 굴원(屈原)이 국화꽃을 맛보았다는 시를 생각하면서, 국화와 정담을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강민우: 꽃은 아니지만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기생입니다. 율곡선생이 황해도 황주(黃州) 기생 유지(柳枝)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실입니까.

율곡: 제가 39세 10월부터 40세 3월 사이에 황해도 관찰사로 있는 동안, 황주로 순찰을 나갔을 때 기생 유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유지는 선비의 서녀(庶女: 첩의 딸)로서 어머니가 기생이어서 기생이 되었는데, 당시 16세가 채 못되는 어린 기생이었습니다. 유지는 잠자리도 제공하는 방기(房妓)로 와서 저를 모셨는데, 참으로 자색이 고왔습니다.

강민우: 그 뒤로 율곡선생님이 원접사(遠接使)로 사신을 맞이하러 지나가는 길이나, 둘째누님을 뵙는 일로 황주를 왕래할 때면, 유지가 언제나 선생님을 모시고 싶어했다지요.

율곡: 제가 촛불을 밝히고 더 이상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 「유지사(柳枝詞)」를 지어주면서 은근하게 정(情)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강민우: 후인들은 이러한 율곡선생의 태도에 대해 ‘사이좋게 어울리면서도 방탕하지 않았다’고 평하기도 합니다.(李有慶; 「遺事」) 유지에 대한 기록은 율곡문집에 실려 있지 않지만, 후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논의한 일이 있습니다. 박세채(朴世采)에 따르면, “율곡이 47세 때 원접사로 황주에 도착했을 때 황주 군수가 유지라는 재주와 자색이 뛰어난 기생을 침실로 보냈는데, 율곡은 유지에게 ‘너의 재주와 자색을 보니 매우 사랑스럽지만, 다만 한번 사사롭게 만나면 의리상 마땅히 데리고 살아야 하니,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내보냈다고 한다. 그 후에 율곡이 해주에 살 때 유지가 밤중에 멀리서 찾아왔는데, 율곡은 「유지사」 한편을 지어주고 물리쳤다”는 내용입니다.

율곡: 그런 소문이 있었군요. 사실 저는 40세의 중년으로 16세의 어린 유지를 처음 만났을 때 시를 지어주었고, 48세 때에도 24세의 성숙한 유지를 앞에 두고서 밤새 정담을 나누며 「유지사」와 3편의 시를 지어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 수의 시를 한번 읊어보겠습니다.

타고난 자태 가냘퍼 선녀처럼 어여쁘고, 天姿綽約一仙娥,
십년을 알고지내니 정분도 깊어졌네. 十載相知意態多.
오(吳)땅 소년처럼 마음이 목석같아서가 아니라, 不是吳兒腸木石,
다만 병든 쇠약한 몸이라 향기로운 꽃 사양하네. 只緣衰病謝芬華. (「제목없음」)

강민우: 이 시를 보면 율곡선생이 유지를 깊이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시도 율곡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당시에 율곡선생의 친우들 사이에는 잘 알려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율곡선생의 유지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이어서 율곡선생께서 당대의 인물들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내용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