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학문세계: 인심도심론과 사단칠정론

 

(10)율곡의 학문세계: 인심도심론과 사단칠정론

강민우: 이제부터는 율곡선생의 학문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율곡선생의 학문적 중심을 이루는 이론이 심성론(心性論)입니까.

율곡: 그렇습니다. ‘심성론’은 주자학의 기본 개념인 태극(太極)-음양오행(陰陽五行) 또는 리(理)-기(氣)의 사유구조에 근거하여, 심(心: 마음)․성(性: 성품 또는 본성)․정(情: 감정)을 해석하는 이론입니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은 심성론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정밀한 토론을 전개하는 것을 학문의 핵심과제로 삼았습니다. 심․성․정의 개념을 리와 기에 분속시켜 해석하면서 주리설(主理說) 또는 주기설(主氣說)의 입장을 취하는 관념적 논쟁을 전개했습니다.

강민우: ‘주리설’과 ‘주기설’은 무슨 뜻입니까.

율곡: 성리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리와 기의 구조로 설명합니다. 이때 리는 원리․이치 등에 해당하고, 기는 기질․형체 등에 해당합니다. 주리설(主理說)은 말 그대로 리를 중심으로 하여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리와 기가 함께 있지만, 함께 있는 가운데 리가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기론’ 역시 마찬가지이니,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가운데 기가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강민우: 리가 주가 되면 어떻고 기가 주가 되면 어떻습니까.

율곡: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심성론은 도덕적 주체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합니다.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근거를 인식하고, 도덕적 실천의 가능성과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와 같은 인식방법이 매우 중요합니다.

강민우: 결국 심성론은 ‘인간의 도덕실현을 위한 실천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군요.

율곡: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민우: 먼저 마음이란 무엇이며, 마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율곡: 마음은 성(性: 성품)․정(情: 감정)․의(意: 의식)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합적 주체입니다. 성․정․의가 모두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마음을 구성하는 하나의 양상입니다. “마음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를 ‘성’이라 하고, 이미 발동한 상태를 ‘정’이라 하며, 발동하여 헤아리는 것을 ‘의’라 한다.”(「答成浩原」) 마음은 성․정․의의 주체이므로 아직 발동하지 않거나 이미 발동하거나 헤아리는 것은 모두 마음입니다.

강민우: 성․정․의는 마음의 다양한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양상(모습)을 가리키는 말이겠군요. 마치 한 사람이 집에서는 가장이요, 직장에 가면 기능공이요, 상점에 가면 손님이 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까요.

율곡: 물론 성․정․의 사이에는 아직 발동하지 않는 것(未發)과 이미 발동한 것(已發)이라는 차이가 있고, 성에서 정․의로 발동하여 나오는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정․의는 모두 마음이 드러내는 양상에 불과합니다.

강민우: 또한 율곡선생은 마음을 “성과 기질이 합하여 한 몸의 주재가 되는 것이다”(「人心道心圖說」)라고 정의하여, 마음과 몸의 관계를 이해하기도 하셨습니다.

율곡: 이때 ‘마음이 몸을 주재하고 몸이 마음의 주재를 받는다’는 인식은 마치 임금과 신하의 관계처럼 구별이 엄격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과 몸을 엄격하게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실제로 몸(身)은 신체라는 부분적 의미와 함께 몸과 마음을 합친 전체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 때문에 ‘주리’라고 하여 리(성)만을 중시하는 것에 반대한 것입니다.

강민우: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인간존재를 이해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율곡: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체성(또는 통합성)의 중시는 저의 성리설을 관통하는 관점입니다. 저는 리․기의 관계에서도 “리와 기는 본래 합치된 것이요, 처음 합하는 때가 있지 않다. 리와 기를 둘로 보려는 것은 모두 도(道)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答成浩原․理氣詠呈牛溪道兄」)”라고 했습니다.

강민우: 이것은 바로 리․기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마음(心)․몸(身)이 서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며, 성․정․의가 독립된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는 일원론의 입장이라는 말씀이군요.

율곡: 임심(人心)․도심(道心) 역시 마음의 작용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른 차이이지, 인심과 도심이 두 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민우: 그렇지만 주자는 “마음은 하나인데, 성명(性命)의 올바름에 근원하기도 하고,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기도 한다.”(「中庸章句序」)라고 하여, 인심과 도심의 관계에서 성명과 형기, 올바름(正)과 사사로움(私)이라는 대립된 구도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율곡: 마음이 발동할 때에 도덕적 가치를 위하여 발동하는 것을 ‘도심’이라 하고, 신체적 욕구를 위하여 발동하는 것을 ‘인심’이라 하여, 대립적 가치의식을 내포합니다. 그럼에도 인심과 도심은 “처음부터 두 마음이 아니요, 다만 발동하는 자리에 두 단서가 있을 뿐입니다.”(「人心道心圖說」) 다시 말하면, 인심과 도심은 마음의 독립된 두 존재양상이 아니라, 두 가지 상반된 가치에로 지향하는 것일 뿐입니다.

강민우: 인심과 도심은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이 바뀌는데 따라 언제든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인심이었다가 도심이 될 수 있고, 도심이었다가 인심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율곡: 이것이 바로 ‘인심과 도심이 서로 시작과 끝이 된다’는 인심도심상위종시설(人心道心相爲終始說)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곧바로 나왔으나 혹 따르지 못하고 사사로운 생각이 사이에 끼어들면, 이것은 도심으로 시작하였다가 인심으로 끝맺는 것이다. 형기(形氣)에서 나왔으나 그릇됨을 알고 욕심을 쫓지 않으면, 이것은 인심에서 시작하였다가 도심으로 끝맺는 것이다.”(「答成浩原」) 인심이 도심으로 바뀌거나 도심이 인심으로 바뀔 수 있는 근거는 의식(意)을 통해 헤아리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민우: 그래서 율곡선생께서 “인심과 도심은 정․의를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答成浩原」)라고 하여, 심․성․정 외에 ‘의’를 강조하셨군요.

율곡: ‘의(의식)’의 기능인 헤아림이 인심과 도심을 자각하고 서로 변하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형기의 사사로움을 지향하는 ‘인심’도 성명의 올바름을 지향하는 ‘도심’에 상반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과제입니다.(「人心道心圖說」).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는 도심은 지켜야 하며 확충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욕심에 빠지기 쉬운 위태로운 인심은 정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때 정밀하게 살피는 것이 바로 의(意)의 작용입니다. 정밀하게 살피는지 여부에 따라 인심․도심의 상태는 상반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마음이 형기의 작용을 지각하고 자세히 살펴서 올바른 이치를 따르게 하면,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듣는’ 결과를 낳고, 정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마음이 지향하는 데로 맡겨두면 ‘인심은 더욱 위태롭고 도심은 더욱 미약하게 되는(人心愈危, 道心愈微)’ 결과를 낳습니다.

강민우: 인간은 대상적 가치가 다른 만큼 마음의 지향이 인심과 도심으로 갈라져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인간의 주체이므로 자신의 마음을 대상에 지배되도록 맡겨두어 악(惡)에 빠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군요.

율곡: 그렇습니다. 심성론에서 인심도심설의 출발점과 귀결점은 바로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고 사사로운 데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도심으로 절제하여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듣는 조건’에서는 인심과 도심이 하나로 일치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강민우: 인심․도심은 그 정도로 하고 사단칠정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율곡: 마음이 사물에 감응하여 발동하면 정(情: 감정)이 되는데, 이것은 아직 발동하기 이전의 상태인 성(性: 성품)이 발동하여 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나무에서 땅 속의 뿌리와 땅위의 가지 사이의 관계처럼, 한 마음에서 성이 발동한 것이 정이요, 모든 정은 성에 근본을 두는 일체입니다. 또한 이때의 정에는 맹자「공손추상(公孫丑上)」에서 말한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사단(四端)’과 같은 도덕적 감정이 있고, 예기「예운(禮運)」에서 말한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七情)’과 같이 일반적 감정이 있으나, 모두 성에 뿌리를 둡니다.

강민우: 사단이 선한 정을 가리키는데 비해, 칠정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는 정을 모두 가리키니, 결국 둘은 도덕적 가치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말씀이군요. 사단과 칠정은 무엇을 말하는지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 궁금합니다.

율곡: 측은(惻隱)은 불쌍히 여기는 정이고, 수오(羞惡)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거나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정이며, 사양(辭讓)은 말 그대로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정이고, 시비(是非)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아는 정을 말합니다. 또한 희(喜)는 기쁨, 노(怒)는 분노, 애(哀)는 슬픔, 구(懼)는 두려움, 애(愛)는 사랑, 오(惡)는 미움, 욕(欲)은 욕심을 말합니다.

강민우: 율곡선생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율곡: 저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두 방향으로 갈라져 나간 대립적 감정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서 선한 감정만을 가리켜서 ‘사단’이라 하는 하나의 정으로 파악합니다. 실재하는 감정은 칠정 하나이니, 사단과 칠정은 모두 하나의 근원인 성(性: 성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이 발동하여 정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절도에 맞느냐 절도에 맞지 않느냐’에 따라 선악의 차이를 드러낼 뿐입니다.

강민우: 이것이 퇴계선생의 사단칠정론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곳이겠군요.

율곡: 사단․칠정의 정을 이기론(理氣論: 리와 기의 형식)으로 설명할 때, 퇴계선생은 사단을 ‘리가 발동하고 기가 따르는 것(理發而氣隨之)’이라 하고, 칠정을 ‘기가 발동하고 리가 타고 있는 것(氣發而理乘之)’이라 하여 사단=이발, 칠정=기발이라는 대립관계로 이해합니다. 이것을 칠대사(七對四)라고도 부릅니다. 이와 달리, 저는 사단․칠정이 모두 ‘기가 발동하고 리가 타고 있는 것(氣發理乘一途)’이라 하여 칠정이 사단을 포괄하는 포섭관계로 이해합니다. 이것을 칠포사(七包四)라고도 부릅니다.(「答成浩原」)

강민우: 율곡선생은 인간 감정의 통합성에 주목하여 인간의 감정이 둘로 갈라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겠요. 이러한 통합적 사고는 리와 기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율곡: 리와 기의 성격을 규정하여 “발동하는 것은 기이고, 발동하게 하는 것은 리이다”(「答成浩原」)”라고 하여, 비록 리와 기가 개념적으로 서로 구별되지만 실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임을 강조합니다. 다만 선악의 문제에서 보면, 리는 순수한 선(理本純善)으로 도덕적 기준이 되지만, 기는 맑거나 탁한 차이가 있으니(氣有淸濁), 리의 순수한 선을 그대로 실현시키기 어렵습니다. 리를 깨끗한 물에 비유하면, 기는 깨끗하거나 더러운 물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또는 기질)는 리를 담는 그릇이다.”(「人心道心說」)

강민우: 선과 악이 갈라지는 원인은 기가 발동할 때에 기의 맑고 탁함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때 맑은 기가 발동하면 선이 되고, 탁한 기가 발동하면 악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여기에서 선악의 조건으로 기의 맑음과 탁함의 문제가 제기된다는 말씀이십니다.

율곡: 저는 선악의 도덕성은 인간의 판단과 선택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기질의 조건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사물의 경우는 막히고 치우친 기질이 고정되어 있어서 변화시킬 수 없으나, 오직 사람만은 마음이 ‘텅 비고 영명하며 밝아서(虛靈不昧)’ 기질의 맑거나 탁함 또는 순수하거나 잡박함(淸濁粹駁) 따른 차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민우: 여기에서 율곡선생은 수양의 방법으로서 ‘기질을 교정하여 바로잡는’ 교기질(矯氣質)의 이론을 제시하셨군요.

율곡: 저는 ‘교기질’의 방법을 마치 어린아이가 거문고를 익히는 것에 비유합니다. 처음 어린아이가 거문고를 탈 때는 그 소리를 듣기가 매우 괴롭겠지만, 쉬지 않고 노력하여 음률을 이루고 마침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그 소리가 맑고 조화로워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답게 됩니다.(聖學輯要)

강민우: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탁하고 잡박한 기질을 맑고 순수하게 바로잡으면, 선한 도덕성과 밝은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율곡: 또한 인간의 존재는 기질로 형성되며, 성은 바로 하늘의 이치(理)가 인간의 기질 속에 부여된 것입니다. 기질에서 보면 심(心: 마음)․성(性: 성품)․정(情: 감정)이 모두 기질이지만, 이치에서 보면 어떤 기질에도 그 근거로써 이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성에 대해서도 본연지성(本然之性: 본연한 성품)과 기질지성(氣質之性: 기질 속의 성품) 사이의 관계를 사단과 칠정의 관계와 같은 구조로 이해합니다. 실재하는 성품은 ‘기질지성’이며, 그 속에서 오로지 이치만을 가리킨 것(單指)이 바로 ‘본연지성’입니다.

강민우: 율곡선생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기질 속에 성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는 기질 속에 성을 포괄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군요.

율곡: 저는 기질을 그릇에 비유하고, 성을 물에 비유합니다.(「論心性情」) 실재하는 인간의 성은 마치 그릇에 담긴 물처럼 기질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기질과 성의 통합된 모습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질의 변화를 통하여 선의 실현을 추구함으로써 도덕적 책임을 지는 주체적 인격성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