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개혁정책과 후세를 위한 저술

 

(12)율곡의 개혁정책과 후세를 위한 저술

강민우: 율곡 선생님이 벼슬길에 나가 활동하던 16세기 후반의 명종(明宗) 말기와 선조(宣祖) 때는 이미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사화(士禍: 士林의 禍)와 임금의 외척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던 세도정치(勢道政治)가 끝나고 사림(士林)이 정치의 중심세력이었던 사림정치시대였습니다. 이때는 훈구(勳舊)․외척(外戚)이 집권하는 동안 누적된 현실의 폐단을 해결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당시 정치를 담당한 사림들의 당면과제였습니다.

율곡: 저는 당시의 당면과제로 경장(更張)을 주장하면서, 성리학이 추상적 관념체계에 안주하거나 예법의 형식적 절차에 집착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저의 경장론(更張論)은 성리학의 가치질서에 근거하여 사회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구체적 현실정치입니다.

강민우: 이념과 현실의 일관적 인식이 조선사회를 이끌어가던 동력이었다는 말씀이십니다. 선생님의 경장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율곡: 경장론은 정치․사회적 폐단이 누적되었을 때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일신해야 한다는 개혁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의 경장론은 현실의 당면과제로서 법과 제도의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임금(君)과 백성(民)을 근본으로 하는 개혁을 전제합니다.

강민우: 제도개혁의 효율성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중시하는 정책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율곡: 저는 현실의 폐단에 눈을 뜰수록 그 해결의 근본에 해당하는 기강을 정립하고 공론을 확장시켜나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덕을 근본으로 삼는 관점과 실무를 긴급한 과제로 인식하는 관점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기 보다는 양자의 통합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강민우: 당시 유학자들은 예학을 정립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의리론(義理論)을 강화하여 이념적 통합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성리학의 기본원리인 도덕적 내지 정신적 근본을 튼튼히 하는 사회체제를 유지하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곡: 사회현실의 모순이 갈수록 심화되고 성리학 이념의 대응논리가 한계를 드러내었을 때, 비록 소수이지만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일부는 성리설이나 의리론에서 관심을 돌려 사회제도의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들이 이른바 ‘조선후기 실학’의 학풍을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강민우: 율곡선생님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탁월한 학자 중의 한 분입니다. 그러나 16세기를 살았던 선생님의 학문과 사상은 한국사상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소중한 교훈과 의미를 남겨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생님의 학문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세계에 독자적이고 명석한 통찰을 발휘한 것으로 높이 평가됩니다.

율곡: 저는 결코 성리설의 분석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인간 심성의 근원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격형성의 방법과 인격의 이상형을 찾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인격적 역량을 확보하고, 나아가 사회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당면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와 방법에 주목했습니다.

강민우: 이 점에서 선생님의 학문은 관념적 성리학이 아니라 ‘실학적 성리학’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율곡: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인간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무엇보다도 인격의 모범형(또는 이상형)으로 선비의 이념을 실현하는 ‘참된 선비(眞儒)’를 추구했습니다. ‘참된 선비’란 “세상에 나아가면 한 시대에 도를 행할 수 있고, 물러나면 만세에 가르침을 베풀 수 있는”(「東湖問答」) 인격을 말합니다.

강민우: 스스로 성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학문에 진력하고, 이 학문의 기반 위에서 당시의 조선사회를 도가 실현되는 이상사회로까지 끌어올려보겠다는 율곡선생님의 포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율곡: 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연강의나 상소문을 올려 명종 임금과 선조 임금에게 이상사회에 대한 신념을 불어넣으려고 하였으며, 현실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 대책을 모색하였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그 시대에서 ‘참된 선비’의 인격이 지닌 의미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찬된 선비’의 한 모범을 이루었다고 하겠습니다.

율곡: 혼란과 부패에 빠져있는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근본과제를 위해, 무엇보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기반의 확보가 절실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추상적 원칙론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의 폐단이나 시급한 개혁과제(時務)를 제시하며, 동시에 법률과 제도의 수정이나 보완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 개혁을 추구하는 ‘경장’의 논리를 강조했습니다.

강민우: 선생님은 이러한 개혁의 과제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실증하고 경전의 이념을 통해 확인해나갔던 것입니다. ‘계승’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과제는 어떤 사회 어떤 시대에서나 요구되는 주제이지만,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와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바로 율곡정신의 빛나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율곡: 저는 앞선 시대에 사회개혁을 통해 이상정치를 실현하고자 시도하다 좌절당한 조광조(趙光祖)를 ‘참된 선비’의 모범으로 삼고, 선비들이 정치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림(士林)정치시대에서 다시 한번 정치개혁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관습에 안주하려는 임금과 신하들의 대세에 밀려 저 또한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민우: 그래서 자신의 시대에 도를 행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물러나 후학을 가르쳐 교육을 통해 만세에 가르침을 펴고자 하여, 해주(海州) 석담(石潭)을 중심으로 강학활동을 벌이셨던 것이군요.

율곡: 그때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학활동만 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42세(1577) 때 해주에서 강학을 하면서, 한편으로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백성들의 풍속을 교화하는 계몽활동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저술하여 교육의 이념을 밝히고 학교제도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을 모르고 망령되이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하니,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擊蒙要訣序」) 학문이란 일상에서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것일 뿐입니다.

강민우: 격몽요결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습니까.

율곡: 격몽요결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제1장의 ①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입니다.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여겨 그만두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이 모두 나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강민우: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학문의 출발점으로서 성인이 되겠다는 자기 목표를 정립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율곡: 그렇습니다. 이어서 ②‘옛 습관을 바꿀 것(革舊習)’, ③‘자신을 지킬 것(持身)’, ④독서(讀書), ⑤‘부모를 섬김(事親)’, ⑥‘상례제도(喪制)’, ⑦‘제사의례(祭禮)’, ⑧‘가정생활(居家)’, ⑨‘사람을 접대함(接人)’, ⑩‘벼슬살이(處世)’의 10장에 걸쳐 배우는 사람이 실천해야할 조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강민우: 격몽요결은 후세에 초학자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권시경(權是經)이 외숙인 조목(趙穆)에게 격몽요결을 드렸더니, 조목이 이를 읽고서 “이 책은 천하 만세에 행해질 만한 것이지, 어찌 동방에만 행해지고 말 책인가.”(趙穆, 「遺事」)라고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격몽요결이 퇴계학파 안에서도 매우 중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곡: 저의 책이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강민우: 특히 선생님의 제자인 조헌(趙憲)은 격몽요결을 중시하여 항상 가지고 다녔으며, 길을 가다가 만나는 선비들에게 격몽요결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닦고 일에 대응하는 요령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선비로서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하거나, 또한 밤을 새워 베껴서 책으로 전해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重峯行狀」) 후에 1788년 정조임금은 강릉에 보존되어 있던 선생님의 친필본 격몽요결을 보고 감동하여 친히 서문을 지은 일화도 전합니다. “이문성(李文成: 율곡)은 내가 존중하고 사모하는 분이다. 그 분의 전서(全書)를 읽고서 그 인품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요즈음 강릉에 그분이 손수 쓴 격몽요결과 남긴 벼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른 가져다가 보았다. 점(點)과 획(畫)이 새롭고 시작과 끝이 한결같아 뛰어난 자품과 시원한 기상이 책을 펼쳐보는 순간 감지되어 이문성과 2백여 년의 시대차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御製栗谷手草本擊蒙要訣序」) 이러한 사실은 격몽요결이 초학교육에 중요함을 정조임금에 의해 크게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율곡: 과찬이십니다.

강민우: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 선생의 학문과 덕망을 사모하여 황해도 지역에 많은 서원이 세워졌습니다. ①소현서원(紹賢書院)은 율곡선생이 해주 석담에 건립했던 강학처인 은병정사(隱屛精舍)를 모태로, 율곡선생 사후 2년 뒤(1586)에 김장생․박여룡 등의 문인들에 의해 세워진 서원입니다. 율곡선생을 배양한 최초의 서원이며, 지역의 이름을 따서 석담서원(石潭書院)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은병정사는 광해군 2년(1610)에 ‘소현서원’으로 사액되면서 율곡학파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황해도 지역의 서원들은 소현서원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 많으며, 율곡선생을 모신 서원으로는 소현서원 이외에도 ②연안부(延安府)의 비봉서원(飛鳳書院), ③배천(白川)의 문회서원(文會書院), ④황주(黃州)의 백록서원(白鹿書院), ⑤안악(安岳)의 취봉서원(鷲峯書院), ⑥재령(載寧)의 경현서원(景賢書院), ⑦장연(長淵)의 용암서원(龍巖書院), ⑧송화(松禾)의 도동서원(道東書院), ⑨은율(殷栗)의 봉암서원(鳳巖書院), ⑩봉산(鳳山)의 문정서원(文井書院), ⑪문화(文化)의 봉강서원(鳳岡書院), ⑫서흥(瑞興)의 화곡서원(花谷書院), ⑬신천(信川)의 정원서원(正院書院) 등 13곳이 있습니다.
그밖에 경기도에는 ①파주의 율곡 묘소 아래 광해군 7년(1615)에 세운 자운서원(紫雲書院)과 ②풍덕(豐德)에 숙종 원년(1675)에 창건된 귀암서원(龜巖書院) 두 곳이 있습니다. 강원도에는 ①강릉에 인조 14년(1636)에 창건된 송담서원(松潭書院)이 있습니다. 충청도에는 ①황산(黃山)에 문인 김장생이 주도하여 세운 죽림서원(竹林書院)과 ②청주(淸州)에 선조 3년(1570)에 창건된 신항서원(莘巷書院) 두 곳이 있으며, 경상도에는 ①청송(靑松)에 숙종 24년(1678)에 창건하여 율곡을 주향으로 모시고 김장생을 배향한 병암서원(屛巖書院)이 있습니다. 또한 평안도에는 ①선천(宣川)의 문공서원(文公書院)과 ②숙천(肅川)의 덕수서원(德水書院) 두 곳이 있으며, 함경도에는 ①함흥(咸興)의 운전서원(雲田書院)이 있습니다. 전국에 모두 22곳 서원에서 주향이나 배향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院享錄」)

율곡: 저를 기리는 서원이 전국에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강민우: 율곡선생님은 비록 49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학자요, 정치가요, 외교가요, 교육자요, 행정가로서 한 시대를 이끌어가며 시대정신을 밝히신 분입니다. 저는 이제야 선생님께서 5천원권 지폐에 들어간 이유가 짐작됩니다. 지금까지 저의 두서없는 질문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율곡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질문은 여기까지로 하고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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