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崔愿)


최원(崔愿)                                                                       PDF Download

1896년∼1943년. 근현대의 유학자.

본관은 해주이고, 자는 의숙(毅叔), 호는 경암(敬庵) 또는 수양자(首陽子)이다. 전우(田愚)와 오석농(吳石農)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최원은 나라가 망하고 도가 쇠퇴한 시대에 살면서 스승의 설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스승인 전우의 심성론을 최원과 연결시켜 소개한다.

전우는 ‘심본성(心本性)’을 자신의 학문적 종지임을 표방한다. ‘심본성’이란 말 그대로 ‘심은 성에 근본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것은 심이지만, 이러한 심이 곧장 선한 행위의 근거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성에 근본하거나 표준으로 삼아야 인간의 행위가 도덕적 당위성을 얻을 수 있다. 심은 어디까지나 순선한 리의 범주가 아니라 선악이 함께 섞여있는 기의 범주이기 때문에 심의 작용이 곧장 선한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이러한 심이 반드시 성을 표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름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당시의 일부 유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유학자들이 바로 이진상(李震相)과 그의 제자인 곽종석(郭鍾錫)을 비롯한 한주학파의 유학자들이다.

이진상은 ‘심이 곧 리이다’는 ‘심즉리(心卽理)’ 이론을 제기하여 심을 성에 근본지어 설명하는 전우의 ‘심본성’ 이론을 비판한다. 여기에서 이진상과 전우의 이론이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전우는 심을 기로 해석하지만 이진상은 심을 리로 해석한다. 전우는 심을 선과 악이 함께 있는 기로 보았기 때문에 심의 작용을 전적으로 선한 행위로 보지 않았으며, 이진상은 심이 심다울 수 있는 것은 심의 본체에 해당하는 리로 보았기 때문에 심의 작용을 전적으로 선한 행위로 보았다. 이에 전우는 ‘심의 작용이 전적으로 선하다’는 이러한 해석이 자칫 마음의 객관성을 상실하여 주관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전우는 ‘성은 리의 범주이고 심은 기의 범주이다’는 인식에서 성과 심을 분명히 둘로 구분한다. 이것은 이진상이 ‘심이 곧 성이고 리이다’는 해석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성리학의 주요 명제인 성즉리(性卽理)에 근거하면 성은 리이지만, 심은 지각작용을 하기 때문에 기의 범주가 된다는 것이다. 성은 리이고 심은 기이며, 또한 성은 형이상의 개념이고 기는 형이하의 기념이다. 형이상과 형이하의 두 범주를 비교하면, 형이상은 높은 것이 되고 형이하는 낮은 것이 된다. 때문에 전우는 형이상의 개념인 성은 높은 것이고 형이하의 개념인 심은 낮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을 또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비유하면, 형이상의 개념인 성은 스승이 되고 형이하의 개념인 심은 제자가 된다.

여기에서 전우의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이 등장한다. ‘성사심제’란 말 그대로 심과 성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비유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비유할 때, 성은 스승의 지위에 해당하고 심은 제자의 지위에 해당한다.

“성사심제란 대개 심의 운용에서 성이 선함이 발현된 것을 모범으로 삼아 하나하나 본받는 것을 말한다.”

심은 어디까지나 성에 근본하거나 성을 표준으로 삼아야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우의 ‘성사심제’ 네 글자는 스스로 창안한 것이라고 자부하였으며, 육경의 수만의 말이 모두 이 이치를 밝힌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심은 성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성은 심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는다는 말이다. 때문에 ‘성사심제’설은 후에 ‘성존심비(性尊心卑)’설로 대체되어 설명된다. 성은 심보다 더 높고 존귀한 개념이며, 심은 성보다 더 낮고 비천한 개념이라는 말이다.

물론 전우의 이러한 심과 성에 대한 해석은 당시 이진상을 비롯한 한주학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심을 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을 곧장 리로 보아 ‘심이 한 몸의 주재가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들은 리에 아무런 작용이 없다는 무위(無爲)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활동하고 주재하는 능동적 개념으로 해석한다. 리가 실제로 활동하고 주재하는 능동적 개념이라야 실제로 인간에 있어서 심의 작용을 주재함으로써 선한 행위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심은 리의 주재 하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심과 리를 일치시켜 심이 곧 리라는 ‘심즉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전우는 심이 곧장 일신의 주재가 될 수 없고, 심이 성을 표준으로 삼는 것처럼 성을 전제로 할 때만이 한 몸을 주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심은 곧장 성(또는 리)의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용성을 가진 기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심이란 영각(靈覺)한 물건에 불과하니 그것을 믿어 대본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명에 근원하여 도심이 되어야 비로소 일신의 주재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전우는 심을 영각한 물건으로 해석한다. ‘영각한 물건’은 어디까지나 맑은 기의 개념이지 순수하고 절대적인 성(또는 리)의 개념과는 구분된다. 아무리 맑은 기라도 순수하고 절대선인 성과는 구분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심 자체가 곧장 일신의 주재가 될 수 없고, 심이 성을 따르거나 성을 표준으로 삼을 때라야 일신의 주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우는

“성에 근본해서 기를 주재하는 것이 심이다”

라고 하였다. 즉 심이 직접 기를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에 근본할 때 심을 주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원은 간재의 성리설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스승의 ‘심본성’이나 ‘성사심제’의 학설을 적극 계승한다. 최원과 전우의 관계를 확인할 있는 글을 소개한다.

“선대부터 소자에 이르기까지 30년간 스승을 섬겼는데, 이 한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금이라도 스승을 앞서는 일이 없었으며, 아는 것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스승을 존경하고 복종하며 섬겼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그러나 최원은 전우의 ‘성사심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성본심주(性本心主)를 강조한다. ‘성본심주’는 성은 근본이고 심도 역시 주인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스승의 주장처럼 ‘성은 높은 것이고 심은 낮은 것’이라고 하면, 자칫 심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힘써 심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우의 ‘성은 스승이고 높은 것이라는 성존(性尊)’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심은 제자이고 낮은 것(心卑)’이 아니라 심도 동시에 주인에 해당하는 높은 지위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원은

“성이 참으로 존귀하고 심도 역시 귀중하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우가 ‘성은 스승이고 높은 것이며 심은 제자이고 낮은 것’으로 보았던 것과 구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원은 심과 성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설명한다.

“스승의 가르침인 ‘성본(性本)’이론은 이미 완비되어 충분한데, 제자가 여기에 더하여 심주(心主)를 말하였다. 대개 스승께서는 성을 낮게 보는 폐단을 구제하려고 ‘심이 낮다는(心卑)’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여 심이 주인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요컨대 심을 낮게 보면, 마침내 힘써 심 공부를 하지 않고서 오로지 성론만을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심은 두루 체용을 잃고 성은 머무를 곳이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과 심의 관계는 스승이 ‘성사심제(또는 성존심비)’로 이미 자세히 밝혀놓았다. 물론 스승의 ‘성사심제(또는 성존심비)’의 요지가 성을 낮게 보는 폐단을 구제하려는 있지만, 그렇다고 심을 낮은 것으로만 보면 자칫 심 공부 자체를 소홀히 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최원은 심은 낮고 비천한 것이 아니라 심 역시 성과 마찬가지로 높고 존귀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야 허령신명(虛靈神明)한 심이 주재작용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고, 성 또한 심에 머무를 곳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가의 ‘본심설(本心說)’은 다만 심만을 말하고 성을 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동시에 동문들 가운데 성을 말하면서 심을 낮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을 비판하여

“성론에 대해서는 말을 잘 들으면서 심의 공부는 보기가 어렵다”

라고 지적한다. 심을 주재로 여기고, 심을 존귀한 것으로 여겨야 비로소 성을 다할 수 있다. 심을 다하면 성을 다하고 성을 다하면 심을 다하니, 이 양자는 두 가지 일이 아니며 서로 체용의 관계가 된다. 이처럼 최원은 스승의 학설을 계승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스승의 이론이 갖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나갔던 것이다.

 

 

[참고문헌]: 「경암 최원의 학문과 사상」(유흥숙․채방록, 『간재학논총』10, 간재학회, 20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