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영(南軫永)


남진영(南軫永)                                                            PDF Download

1889년(고종 26)∼1972년. 근현대 유학자.

본관은 영양, 자는 정함(靜涵), 호는 무실재(務實齋)로서, 조선 후기 기호학파 낙론계열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전우의 문인이다. 1889년에 울진 정림에서 태어나 1972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진영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였으며, 친척인 정오공(靜塢公)에게서 배움을 시작하였는데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전우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자, 스승인 전우가 ‘무실재’라는 호를 친히 써서 내릴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전우가 일제의 침략에 분개하여 서해의 섬으로 이주하자, 남진영은 몇몇 동학들과 험난한 뱃길을 무릅쓰고 따라가 몸소 나무하고 밥을 지어 스승을 모셨다. 샘이 멀어 섬 아낙들도 물을 길러 가기를 싫어했지만, 남진영은 꼭 밤에 일어나 물 긷기를 여러 달 동안 하면서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때가 21세였다.

후에 동문인 남정재(南正齋)․김학산(金鶴山)․노창동(盧滄東)․주비암(朱毖菴) 등과 신림 덕은산에 집을 짓고 강학을 하자, 전우는 친히 소행재(素行齋)라는 글자를 써서 격려하고 현판을 걸게 하였다. 또한 일찍이 스승으로부터 권순명(權純命)․유영선(柳永善)과 우의를 나누라는 당부를 받고 평생토록 형제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조선의 정조 임금이 송나라의 주자(주희)가 여러 학자와 제자들과 나눈 성리학에 관련된 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낸 『주서백선(朱書百選)』을 좋아하여 부친이 필사한 『주서백선』을 상자에 넣어두고 즐겨 읽었으며, 주자의 초상을 책 속에 두고 때때로 공경히 대하며 주자를 닮고자 하였다.

남진영은 항상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를 서로 대조해서 읽으며 주자의 성리설을 연구하기를 침식을 잃을 정도였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주자대전』과 『주자어류』를 반복해서 살피고, 주자의 문장을 시기별로 고증하는 작업을 계속하여 이들의 책을 모두 암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하는 이진상과 같은 심학파들을 비판하는 한편, 유교와 불교를 구별하여 주자학의 본령을 확립하는데 있었다. 그의 학문 방법은 주자의 초년설과 만년설을 엄밀히 구분함으로써 주자 만년의 정설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그 정밀함은 스승의 인정을 받아 전우 자신이

“나의 말이 동쪽으로 갔다”

라고 했을 정도였다.

남진영의 이론 중에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각설(知覺說)의 문제이다. 심의 지각을 인․의․예․지와 같은 사덕(四德)의 하나인 지(智)의 문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남진영은 심의 지각을 지(智)의 작용(리)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고, 심의 지각을 기의 영역에 소속시켜 해석한다. 그 근거로 주자의 초년설과 만년설을 구분하고, 심의 지각을 지(智)로 해석하는 것은 주자의 초년설이요, 심의 지각을 기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자의 만년설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국 주자의 지각설의 정론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으로써 주자 성리학의 근본 명제가 성즉리(性卽理)인지 아니면 ‘심즉리’인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성은 다만 리이고, 정은 유출하여 운용하는 것이다. 심의 지각은 이 리를 구비하여 이 정을 행하는 것이다. 지(智)로써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아는 리가 지(智)요, 옳고 그름을 알아서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정이고, 이 리를 갖추어 옳고 그름을 지각하는 것은 심이다. 이 구별은 미세하므로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

남진영은 심의 지각과 지(智)와의 차이를 심․성․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주자는 심․성․정의 관계를 심통성정(心統性情)으로 규정하여 심․성․정의 범주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예컨대 옳고 그름을 아는 리가 지(智=성)요, 옳고 그름을 알아서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정(情)이며, 이러한 옳고 그름의 리를 갖추고서 옳고 그름을 지각하는 것은 심(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가린다면, 먼저 옳고 그름의 객관적 근거 혹은 원리가 있어서 그 합리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근거 내지는 원리가 있다고 해도 원리는 단지 객관적 원리일 뿐이니, 원리가 능동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리를 지각하여 옳고 그름을 가리는 주체는 인간의 마음이다. 즉 옳고 그름의 원리를 지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릴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은 심이고, 그 마음이 발출되어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정이라는 것이다. 주자학의 ‘심통성정’에서 심이 성과 정에 대해서 주재적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은 다만 원리(性卽理)이므로 능동성이 없으며, 정 또한 이미 발출된 감정이므로 오직 심만이 원리인 성을 지각하고 이미 발출된 감정을 반성하여 조절하는 능동적 주재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지(智)는 원리이므로 리가 되고, 심은 지각 작용하는 주체이므로 기가 된다. 따라서 ‘심의 지각’과 ‘지(智)의 지각’은 그 의미가 다르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주자에 의해 ‘리는 무위(無爲)하고 기는 유위(有爲)하다’는 속성을 갖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리는 실제로 능동적 작용이 없는 형이상의 개념이며, 기는 능동적 작용성을 갖는 형이하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지(智)는 인․의․예․지 사덕의 하나로서 리에 해당하므로 작용성이 있을 수 없고, 다만 심만이 지각이라는 작용성을 갖는다. 주자가 ‘지의 지각’이라는 말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의 지각은 ‘심의 지각’과 같은 작용성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주자가 비록 ‘지(智)의 지각’과 ‘심의 지각’이라는 말을 같이 썼을지라도, 전자는 성(=리)을 가리키고 후자는 실제로 지각 작용을 일으키는 기로써 범주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진영은 ‘지(智)의 지각’은 주자의 초년설이고 ‘심의 지각’이 주자의 만년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지각설이 문제되는가. 남진영은 무엇 때문에 주자의 ‘지의 지각’과 ‘심의 지각’을 초년설과 만년설로 구분하여 고증하는가. 이것은 바로 ‘심즉리’를 주장하는 심학자들의 지각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고증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정미한 철학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각설은 성리학의 주요 명제인 ‘심통성정(心統性情)’의 해석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각설이 궁극적 진리의 소재와 인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즉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심학자인 이진상(李震相)은 ‘심의 지각’과 ‘지의 지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심의 지각과 성의 지각은 둘이 아니다. 지(智)는 지(知)의 본체요, 지(知)는 지(智)의 작용이다. 이제 지각을 심이라고 하여 오로지 기에만 속한다고 하면 일부만 들고 전체는 버린 것이다.”

이진상에 따르면, 기는 단지 청탁수박한 기질에 불과하므로 기 자체에는 본래 허령지각이 있을 수 없고, 리와 합일함으로써 지각작용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남진영처럼 ‘심의 지각’과 ‘지의 지각’을 서로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에 지(智)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지’를 통해 심의 지각작용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지(리)의 지각’과 ‘심의 지각’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남진영은 심을 기로 규정하고, 심 자체에는 어떤 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반드시 심과 독립해서 객관대상으로 존재하는 리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리와 합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자가 격물(格物) 공부를 중시하여 심과 리의 합일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즉 심에는 어떤 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같은 공부를 통해야만 이러한 리를 인식할 수 있다.

먼저 ‘경’ 공부를 통해 심을 허령하게 하고, 이러한 허령한 심을 통해 리를 인식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주자학에서는 후천적인 수양공부가 강조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은 어디까지나 지각할 수 있는 능각(能覺)의 의미이고, 리는 심에 의해 지각되는 소각(所覺)이다. ‘능각’이므로 기(유위)가 되고 ‘소각’이므로 리(무위)가 되니 둘은 엄격히 구분된다. 이러한 사고는 ‘성사심제(性師心弟)’를 주장하여 심의 영각(靈覺)보다는 성의 도리를 중시하는 전우의 성리설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무실재 남진영의 성리설에 관한 연구」(최일범, 『간재학논총』4, 간재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