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立志) – 어떤 꿈을 꾸는가?


어떤 꿈을 꾸는가?

 

꿈이 없는 사람은 대체로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에는 꿈이 없으면 자신의 욕망을 따라 또래들과 어울려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거나 때로는 탈선하기도 한다. 이처럼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꿈이란 항해하는 선박의 지피에스(GPS)와 깜깜한 밤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이런 청소년들 또는 청년들이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하고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지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의 『학교모범(學校模範)』을 통해 현대적 의미를 살피려고 한다.

이 책은 1582년(선조15) 율곡 선생이 왕의 명에 의하여 지은 책으로 당시 교육제도의 미비한 점을 보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청년과 청소년 교육을 새롭게 하기 위한 여러 주장들이 들어 있다. 총16개의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이글은 그 순서에 따라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다만 내용상 유사한 독서와 그 방법의 항목만 통합하여 총15개의 내용으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당시 교육기관으로 지방의 향교와 서울의 4학, 그리고 성균관이 있었다.

아무튼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수준의 꿈은 대개 그 사회에서 인정받거나 유리한 위치에 있는 직업을 꿈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가령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대개 판사·검사·의사·과학자 등이 인기였고, 2000년대부터는 여기에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등이 추가 되었다. 그러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2010년대 이후부터는 교사나 공무원도 거기에 끼어들었으나 순수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 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거나 인기를 끌며 돈을 많이 벌거나 생존에 유리한 그런 직종이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모두가 이런 꿈을 꾸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자신의 학교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그런 것이 아니어서, 또 학부모의 경제력이 받쳐주지 못해서 꿈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이다.

종합하면 청소년기의 꿈은 생존을 위해서나 출세와 야망을 위해서 가지게 되며, 드물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주변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종교의 영향으로 그 나이 또래들이 생각지 못한 꿈을 갖기도 한다. 가령 예술가와 학자나 성직자 또는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꿈을 접고 생계만을 위한 직업을 택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집안의 재력으로 바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그 나머지는 생계와 꿈을 병행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경우는 세 번째였다.

그런데 문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잘나가던 직업도 장래성이 불투명해지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직업들은 기계가 대신하면서 대량 실직이라는 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청소년들은 장래의 꿈조차 제대로 꿀 수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이런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율곡 선생은 이 책의 첫 번째 입지(立志)를 다루는 주제에서 성인(聖人)이 되기를 꿈꾸라고 한다.

첫째는 입지(立志)이니 … 분발하고 힘써서 꼭 성인이 되어야 하겠다고 한 뒤에 그친다.

 

비록 옛날 말이라 해도 요즘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생뚱맞은 일이라 모두 놀라 자빠질 일이 분명하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이렇게 말하면 놀라울 일인데, 하물며 제4차 산업을 눈앞에 둔 오늘이겠는가? 그러니 율곡 선생의 이런 주장을 옛날 사람의 케케묵은 주장으로 여기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유학에서 말하는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 그리고 공자(孔子)님과 같은 성인이 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너무 높은 목표 같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우선 율곡 선생의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이 공부했던 학문을 이해해야 한다. 그 학문은 중국 남송 때 주자(朱子)라는 분이 완성한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공자와 맹자(孟子)로 이어지는 유학(儒學)을 송나라 때 새롭게 해석한 학문이다. 그리고 성리학은 인간이 착하게 태어났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이었다. 맹자는 인간이 모두 착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

 

고 하여, 율곡 선생도 맹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믿어 배우는 사람은 이렇게 성인이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람이 착하게 태어났다면 어째서 현실에서는 나쁜 사람도 있는가? 이것을 성리학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은 착한 이치를 갖추고 태어났지만, 그 착한 이치를 가리고 막는 것은 기질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본성대로 바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나, 나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비록 본성은 착하지만 그 나쁜 기질의 방해를 받아 착한 본성이 발휘될 수 없어 나쁜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란 착한 본성을 덮어 가리는 기질을 변화시켜 본래의 착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성리학은 이렇게 공부를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면 부모 된 자는 자식을 당연히 사랑하며, 자식 된 자는 부모를 마땅히 효도하는 등 사람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천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까 이런 성인이란 자신이 자연적으로 타고난 착한 본성이 기질의 방해를 받지 않게 완벽하게 발휘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실제적으로 어떻든 간에 원리적으로 보면 매우 명쾌하고 쉽다. 물론 성인으로서 인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그렇지 못하다면야 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선생이 누구나 성인이 되기를 꿈꾸라는 말은 대단한 자기 긍정이다. 고작 교과 성적 따위가 나쁘다고 자기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여기거나 남보다 외모가 뛰어나지 못하다고 하여 열등감을 갖는다면, 이것은 이런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망치는 일이다. 선생은 『격몽요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학문이란 게 별다른 일이 아니다. 평상시 생활하고 행

동하는 동안에 일에 따라 마땅함을 얻도록 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이런 학문을 통해 각자의 직업이 농부든 의사든 공무원이든 환경미화원이든 또 무엇이든 간에 매사에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고 바르게 처신하면 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비록 각자 다른 꿈을 가지더라도 결코 성인을 꿈꾸는 데 방해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올바르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공부가 더 필요하지만 전통적으로 유학은 각자의 사적인 욕심보다는 모두를 위하는 공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올바르다 보았다. 물론 당연이 나의 몫으로 돌아올 것을 챙기는 것을 사사로운 욕심이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몫과 분수를 넘어 남의 것이나 공공의 것을 탐내는 것이야 말로 사사로운 욕심이다.

그러니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온 헛된 명예나 권력이나 재물이나 입신양명 따위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어떤 직업을 갖든 천부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착한 본성을 잘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현대판 성인이 아닐까? 사실 사람이 착하게 또는 나쁘게 태어났는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착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인 훨씬 보람된 삶이 아닐지? 청소년들이 이점을 깨닫기는 아직 이르지만, 부모나 주변의 성인(成人)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랄 것이다.

아무튼 공부를 시작할 때 꿈을 잘 가져야겠다. 선생처럼 성인이 되겠다는 꿈도 소박하게 생각하면 매사에 각자의 위치에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