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현상과 인간사회


 

자연현상과 인간사회

 

제 율곡의 「천도책」이 어떤 성격의 글인지 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내용에는 부분적으로 순수한 자연과학적인 내용도 들어있지만, 전체 맥락은 인간사회의 일이 날씨와 천문현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 이후의 천인감응설이 녹아있다. 「천도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문제와 답은 이를 한층 강조하여 마무리 짓고 있다.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인간사회의 일 특히 군주가 하는 일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지막 문제는 이렇다.

 

“간혹 자연의 운행이 평상시와 달리 어긋나는 것은 하늘의 기가 어그러진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사회의 일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어떻게 하면 일식과 월식이 없고, 별이 궤도를 잃지 않고, 우레와 벼락이 치지 않고, 서리가 여름에 내리지 않고, 눈이 너무 많이 내리지 않고, 우박이 재앙이 되지 않고, 폭풍과 긴 장마의 피해가 없이 각각 그 질서에 따라서, 마침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잘 길러지는 경지에 이르는가? 그 경지는 어떻게 가능한가?”

 

요즘은 명석한 초등학생 수준이라도 이 문제의 답을 말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천문현상과 날씨 변화는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세상에서도 막을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미리 알아 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날씨와 기후는 이제 인간의 일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기오염과 지구의 온난화로 말미암아 그렇다.

그렇다면 당시 어떤 신통술을 써서 날씨나 기후 또는 천문현상마저도 조절이 가능할까? 먼저 율곡의 답을 살펴보자.

 

“저는 듣기로 임금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 세상을 바르게 하고, 세상이 바로 되면 천지의 기도 바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마음이 화평하면 몸도 화평하고, 몸이 화평하면 기도 화평하고, 기가 화평하면 천지도 화평하게 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지의 기가 바르다면 어찌 일식과 월식이 생기며, 별이 어찌 그 궤도를 잃겠습니까? 천지의 기가 화평하다면 천둥·번개·벼락이 어찌 그 위력을 날리며, 바람·구름·서리·눈이 어찌 그 때를 놓치며, 흙비를 내리는 어그러진 기가 어찌 그 재앙을 만들겠습니까? 자연은 비·햇볕·더위·추위·바람을 가지고 만물을 생성하고, 임금은 삼가고 어질고 명철하고 지략이 있고 성스럽게 함으로써 자연의 원리에 응합니다. 자연이 때에 맞게 비를 내리는 것은 삼감과 같고, 때에 맞게 햇볕이 나는 것은 어진 것과 같고, 때에 맞게 더운 것은 명철에 응한 것이며, 때에 맞게 추운 것은 지략에 응한 것이며, 때에 맞게 바람이 부는 것은 성스러움에 응한 것입니다. 이같이 살펴보면 천지가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지는 것은 어찌 임금 한 사람이 덕(德)을 닦는 데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로 『중용』을 지었다고 전해짐)가 말하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화육(化育)할 수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넓고 크게 만물을 발육하여 높이 하늘에 닿았다.’ 하였으며, 정자(程子, 북송 때의 철학자)가 말하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요령은 다만 홀로 삼가는 데 있다.’ 하였습니다. 아! 지금 우리나라의 동물과 식물이 모두 자연의 화육(化育) 속에 고무(鼓舞)되는 것이 어찌 성스런 임금이 홀로 삼가는 데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천지의 변화 곧 천문현상을 포함하여 날씨와 기후는 전적으로 인간에 달려있고, 그 또한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는다. 군주가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는 신독(愼獨)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용』과 『대학』의 중심 사상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애초에 가졌던 의문, 곧 율곡 같이 명석한 분이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상식에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을 정말로 믿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율곡 자신도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상식 밖의 이론이라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과거시험의 문제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입장 또는 견해를 묻는 일종의 면접시험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있다. 곧 답안에서 등장하는 측천무후가 바로 당시 명종을 섭정했던 문정황후를 상징하듯이, 자연의 이변을 통해 잘못된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또는 군주의 전횡을 견제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나온 문제와 답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과거시험을 보는 초학자들에게 그런 마음의 자세를 묻는 문제라고 한다. 자신의 입장을 묻는 논술시험이라고나 할까?

필자는 당시 유학자들이 이런 취지로 과거시험의 문제를 제출할 수 있다는 데 일단 동의한다. 그런데 율곡이 정말 그런 생각이 상식에 벗어난 줄 알면서 답을 썼을까? 그렇다면 율곡은 정말로 정직하지 못한 과거시험의 합격만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율곡은 단지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유학자들의 이념적인 이론을 묵묵히 따르는 지극히 현실에 영합하는 모범생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그보다 사실 율곡이 이 답안을 쓸 때는 23살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자신이 읽고 들은 대로만 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전의 관점을 특별한 비판 없이 믿고 종합해서 진술했을 것이다. 천인상감설이 상식에 벗어났다는 점을 익히 알면서 이 답안을 작성했다면 너무 약삭빠르고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자연관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천자(왕)는 하늘의 명을 받아 세상을 다스린다는 정치철학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원리와 인간사회의 일이 관여한다는 점은 어쩌면 순수한 자연과학의 발전의 저해요인이 될 수 있었다. 서양에서도 바로 자연에서 중세의 신학적 목적론을 제거하고, 자연을 순수한 그 자체의 원리로 보고자 함으로써 근대과학이 출발하게 되었다.

조선후기 홍대용과 최한기의 경우는 비록 신학적 목적론이 함유된 서양과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런 목적론을 제거하고 자연을 인간의 일과 무관한 그 자체로 보고자 하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런 천인상감적인 분야설(分野說)과 일식과 월식을 바라보는 미신적 견해를 비판하였다. 그들에겐 자연을 인간사회와 무관한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한편 이런 천인상감적 태도는 최근까지 남아있었는데, 기상이변이나 풍년과 흉년을 대통령의 치적과 연관시키는 일이 그것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방송에서 몇 년 째 풍년이 들었다고 강조하는 일을 결코 우연한 일로 보아 넘길 것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