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에서 왕의 건강도 점검하다


 경연, 왕의 공부 이야기 5

<경연에서 왕의 건강도 점검하다>

 

선조실록』선조 38년 을사 11월 3일의 일이다.

시에 임금이 별전에 나아가니 영사 유영경, 지사 유근, 특진관 박홍로․남근, 대사간 성이문, 참찬관 유간, 시강원 박진원, 지평 민덕남, 검토관 박안현, 가주서 이홍망, 기사관 임장․이현이 입시하였다.

유영경 : 성상의 건강 상태가 어떠하십니까? 풍습(風濕:질병을 부르는 기운으로 바람의 기운과 습하고 축축한 두 기운이 만나 근육과 신경 등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치료하는 약을 일전에 드렸는데, 효과를 보셨습니까?

선조 : 부기(浮氣)가 간혹 있는데 왼손이 오른손보다 심하다. 겨울 동안에는 약을 약간 복용하고 있다가 따스한 봄이 되기를 기다려 침과 뜸을 시술받을 생각이다. 의술은 경연에서 말할 것이 아니나, 마침 이를 언급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근래에는 의술이 너무도 허술하다. 내가 의술은 알지 못하나, 병의 증세와 이치로 궁구하면 또한 알 수 있다. 약을 쓰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인데, 의관들은 쉽게 약을 써서 어느 병에 대해 물으면 무슨 약을 쓰라 이르고, 가미(加味:이미 구성되어 있는 처방에 다른 약재를 더 넣는 것)하는 것 또한 많아서 본방(本方:한의학 서적에 있는 그대로의 약방문)의 약효를 잃게 한다. 내가 필요 없는 약을 복용한 것이 이제 해를 넘겼다. 이 약을 복용하여 효과가 없으면, 또 다른 약을 복용하곤 할 따름이다.

유영경 : 옛사람들은 병의 증세를 알아서 다스렸는데, 지금 사람들은 병의 증세를 알지 못합니다.

선조 : 중종조에 안찬(安瓚)이란 의관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두통 앓는 것을 보고 바로 낙상(落傷)이 원인이라고 진단을 하고 약을 써서 즉시 그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참으로 귀신같다고 하겠다.

3대를 계승한 의원이 아니면 그 약을 먹지 않는다 했고, 공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약은 감히 먹지 않는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약의 복용을 신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약 쓰기를 매우 쉽사리 하니, 지금의 의술을 알 만하다.

중원 사람은 이에 대해 많은 책자를 만들었는데, 『평림(評林)』과 『의학입문(醫學入門)』같은 책들은 모두 양생(養生: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하는 것)의 방법을 말하여 사람을 기만한 것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이를 믿고 배운다면 필시 생명을 잃는 일이 많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모두 신농씨(神農氏:전설상의 제왕)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대개 사견으로서 방서(方書:약방문을 적은 책)를 만들기 때문에 도리어 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조정의 선비 가운데도 의술에 능한 자가 있었다. 정작(鄭碏)의 형 정염(鄭磏)은 의술에 정통하여 인종을 진찰하였다. 그런데 지금 의술은 단지 찌꺼기만을 훔쳤을 뿐이다. 나는 심병(心病)을 앓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면서도 말의 시비를 알 수 없다. 또 내가 일전에는 입으로 토설하지 못하여 벙어리 같았는데, 오늘날 이 자리에서 경들과 함께 말할 줄을 어찌 예측하였겠는가?

 

조선왕조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왕실의 방계에서 처음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조선 제14대왕 선조였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으니 아마도 태어나는 순간엔 왕이 될 운명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명종이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제각각 성격상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선조도 인격적 결함이 많은 왕이었다. 이황․이이․조식․기대승․류성룡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성리학의 갖가지 학설과 이론이 만발한 데다, 충실하게 제왕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왕이 된 소년 군주 선조로서는 당대 석학들로부터 받는 최고 수준의 교육과 제왕의 자질에 대한 요구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을 넘게 되면서 국가체제의 모순이 드러날 대로 드러나, 율곡 이이가 표현한 대로 고대광실(高臺廣室:높은 누대와 넓은 집)의 기와집이 겉만 멀쩡하고 속은 벌레가 먹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상태였다. 여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년간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나라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위의 경연은 참혹한 전란이 끝난 뒤 10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던 1605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선조의 나이는 44세였다. 선조의 부기는 오랫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결과 생긴 병증으로 보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로가 쌓이면 노곤하고 피곤해져서 말하는 것도 짜증나고, 움직이면 숨이 차며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불안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스트레스성 장해가 선조에게 부종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심병은 기혈이 부족하거나 기가 몰리고 심화(心火)가 왕성해져서 생기는 병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면서 아프며, 숨이 차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건망증이 생기기도 한다. 선조가 스스로 자기가 한 말의 시비를 알 수 없고 때로는 벙어리처럼 말을 못하기도 했다는 증상과 일치한다. 막중한 국사로 스트레스가 쌓인 데다가 역대 어느 왕도 겪지 못한 전란을 당했으니, 어찌 이런 병이 생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