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1만자의 상소를 올리다


 

율곡, 1만자의 상소를 올리다

 

율곡전서』제5권 소(疏)에 기록된 「만언봉사」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요약해본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정사는 때의 알맞음을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성실한 노력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니, 정사를 하면서 때의 알맞음을 모르고 일을 당하여 성실한 노력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스러운 임금과 어진 신하가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치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총명 영의하시고 선비를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하시매, 안으로는 음악과 주색을 즐기는 일이 없고 밖으로는 말달리고 사냥을 좋아하는 일이 없으시니, 옛날 군주들이 자신의 마음과 덕을 해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노성(老成)한 신하를 믿어 의지하고 명망이 있는 자를 뽑아 쓰며, 곧은 말을 너그럽게 용납하여 공론이 잘 시행되므로 조야(朝野)가 부푼 가슴을 안고 잘 다스려지는 정치를 고대하고 있으니, 기강이 엄숙해지고 민생이 생업을 즐겨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기강으로 말하면, 사사로운 정을 따르고 공도를 등지는 것이 예전 그대로이고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그대로이고 백관이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이 그대로이고, 그 민생으로 말하면 집에 항상 생산이 없는 것이 예전과 마찬가지이고, 안주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마찬가지이고, 궤도를 벗어나 사악한 짓을 하는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일찍이 이를 개탄하고 삼가 그 까닭을 깊이 찾아내어 한번 전하께 말씀드리려고 하면서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하였는데, 엊그제 삼가 전하께서 천재(天災)로 인하여 대신에게 내리신 전교를 보니, 전하께서도 크게 의아해 하시고 깊이 탄식하시어 이 재변을 구제할 계책을 들어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뜻있는 선비가 할 말을 다할 기회인데, 애석하게도 대신들은 지나치게 황공하고 불안해 한 나머지 할 말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체로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이 심원하여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우나 역시 임금을 사랑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역사를 두루 살펴보건대, 옛날 명철하고 의로운 임금이 큰 사업을 이룰 수 있는데도 정사가 혹시 닦여지지 않으면 하늘은 반드시 견책을 내보여 놀라게 하였으며, 하늘과 관계를 끊은 자포자기한 임금에 있어서는 도리어 재변이 없었으니, 이 때문에 재변이 없는 재변이야말로 천하에 가장 큰 재변인 것입니다.(중략)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자세히 보시고 익히 검토하시며 신중히 궁구하고 깊이 생각하시어 그 가부를 의논하게 한 뒤에 이를 받아들이거나 물리치신다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전하께서 신의 계책을 채택하신다면 그 진행을 유능한 사람에게 맡겨 정성껏 그것을 시행하게 하고 확신을 갖고 지켜 나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보수적인 세속의 견해로 인하여 바뀌게 하지 말고, 올바른 것을 그르다 하며 남을 모함하는 말로 인하여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3년이 지나도록 나랏일이 여전히 부진하고 백성이 편안해지지 않으며 군대가 정예로워지지 않는다면, 신을 기망(欺罔)의 죄로 다스리어 요망한 말을 하는 자의 경계가 되도록 하소서.”

 

1574년(선조 8) 1월 당시 천재지변이 자주 발생하자 선조는 대신들에게 이러한 천재지변에 대응하는 계책을 지어 올리라고 하였다. 이에 응하여 1만자가 넘는 장문의 상소를 올린 것이 바로 「만언봉사」이다. 이때 율곡은 나이 39세로 승정원 우부승지였다.

율곡은 조선왕조 건국 이후 200여 년이 지난 당시를 그동안 나라 전체에 많은 폐단이 쌓인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고 국가 운영체제의 혁신을 통하여 새로운 기풍을 조성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정치․경제․민생․군사 문제 등 국정 운영의 모든 분야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역사적 사례와 문제의 진단, 그리고 철저한 원인 분석에 의거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율곡의 시무책이 드러나 있는 글 가운데 「만언봉사」가 특별히 중요한 까닭은 그가 추구한 개혁의 두 가지 핵심어가 가장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시의(時宜), 즉 ‘시기에 알맞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공(實功), 곧 ‘실질적인 공적을 얻는 것’이다. 율곡은 「만언봉사」를 통해 ‘적당한 시기’와 ‘실질적인 효과’ 이 두 가지야말로 개혁을 성공시키는 핵심임을 밝혔다.

율곡은 상소의 말미에서 자신의 건의를 채택하여 국정을 개혁한다면 반드시 3년 이내에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상소를 읽은 선조는

“상소의 사연을 살펴보니 요순시대를 만들겠다는 뜻을 볼 수 있었다. 그 논의는 참으로 훌륭하여 아무리 옛사람이라도 그 이상 더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을까 어찌 걱정을 하겠는가. 그 충성이 매우 가상하니 감히 기록해 두고 경계로 삼지 않겠는가. 다만 일이 혁신에 관계되는 것이 많아 갑자기 전부 고칠 수는 없다. 이 상소문을 여러 대신에게 보여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고 상소문을 등서하여 올리라.”

고 하면서 끝내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만약 당시 선조와 조정에서 율곡의 상소를 채택하여 개혁 정치를 실행하였다면, 아마도 조선왕조가 제2의 도약을 이뤄 임진왜란과 같은 초유의 국난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선조를 움직여 경장을 이끌어 내어 토붕와해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율곡의 진심 어린 노력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율곡의 이 「만언봉사」는 조선왕조 오백년사에 있었던 상소문 중의 상소문으로 후대의 정치인과 학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아직도 율곡의 이 상소문은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