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원리


 

바람이 부는 원리

 

람은 어떻게 해서 생길까?

이 질문의 답은 초등학생들도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다음은 예전 교과서에 나온 실험 내용이다. 사방이 막힌 사각 모양의 상자에 윗면과 앞면을 유리로 만들고, 그 속에 물이 든 접시와 모래가 든 접시를 양쪽 끝에 나누어 두고 그 속에 향 연기를 넣은 다음, 위쪽에서 갓을 씌운 약간 뜨거운 백열전등을 오랫동안 비추면서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향의 연기가 모래 접시에서 상승하여 건너편 물이 든 접시 위로 갔다가 내려오고, 물이 든 접시 쪽의 연기는 모래가 담긴 접시 쪽으로 이동하면서 빙빙 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통 속의 모든 연기가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람은 보통 저기압에 속한 공기가 따뜻해져 상승할 때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기압에서 상대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이 통 속의 물 위의 공기가 모래 위로 이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통의 아랫면만 지표처럼 생각한다면 물 쪽에서 모래 쪽으로 공기가 이동하니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람이란 공기의 이동인 셈이다.

바람과 관련된 「천도책」의 첫 번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나 어디로 들어가는가?”

 

여기서 질문이 참 묘하다. 바람이 일어나는 곳과 들어가는 곳을 물었다. 그러나 앞에서 바람의 원리를 설명한 것을 참고하면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저기압의 공기가 열을 받아 가벼워져 상승하니까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기압에서 불어와 저기압인 곳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장소는 정해진 곳이 없다.

그에 대한 율곡의 답은 이렇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것은 기(氣)입니다. 음기(陰氣)가 엉기고 모여서 밖에 있는 양기(陽氣)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은 비록 ‘북동쪽에서 나와서 남서쪽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나, 그 음기가 모이는 것에 정해진 곳이 없으므로 양기의 흩어지는 것도 방향이 없습니다. 큰 땅덩이가 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찌 한 방위에서만 얽매이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동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쌀쌀하게 식물을 말라 죽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서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구부러진 탱자나무에 와서 깃들고 빈 구멍에 바람이 불지만, 그렇다고 빈 구멍에서 처음 시작한다고 하겠습니까?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레는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였으니, 저 또한 바람이 흔들흔들 살랑살랑 부는 것은 기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치는 것으로, 애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기의 이동인데, 율곡의 답에서 ‘기(여기서는 공기를 말함)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친다.’라고 표현한 것은 바람이 기의 이동이라는 관점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바람이 부는 데도 일정한 방향이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바람이 부는 원리에 대해서는 ‘음기가 엉기고 모여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빙글빙글 돌아서 바람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음기는 찬 공기 양기는 따뜻한 공기라 말할 수 있는데,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니 찬 음기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부는 것이 바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기상학이 발달한 후대에 알려진 사실이므로 당시에 바람의 원리를 제대로 아는 것은 무리였다.

바람에 관한 두 번째 질문은 이렇다.

 

“어떤 때에는 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소리 나게 울리지 아니하는데, 어떤 때에는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뜨리며, 순풍도 되고 폭풍도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질문은 바람의 세기가 다른 이유를 묻는 질문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듯이 저기압과 고기압의 기압차가 클수록 바람도 세다. 태풍의 경우를 보라. 중심부와 주변부의 기압차가 보통의 그것보다 훨씬 크지 않는가? 그렇다면 율곡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는 음양의 기가 펴져서 맺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기가 흩어지더라도 반드시 부드러워 불어도 나뭇가지조차도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도리가 이미 쇠약하면 음양의 기운이 막혀서 펼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격렬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뜨립니다. 순풍은 부드럽게 흩어지는 것이요, 폭풍은 격렬하게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이 한 생각을 잘못하자 큰 바람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周公)이 수년 동안 좋은 정치를 펼치자 바다에는 풍파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氣)가 그렇게 된 것은 역시 인간의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바람의 세기는 인간의 일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사회가 잘 다스려지면 순풍이 불고 인간사회가 혼란스러우면 폭풍이 분다고 한다. 여기서 성왕은 고대 주나라 무왕의 아들로서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사람이고, 주공은 그의 숙부로서 어린 성왕을 도와 섭정(攝政)으로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이다. 두 사람의 다스리는 방법을 비교하여 그 결과를 바람으로 표현하였다.

이런 생각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한(前漢)의 동중서(董仲舒)의 이론에 따른 것이지만, 요즘 초등학생들도 믿지 않는 이런 이론을 조선시대 율곡 같은 명민한 선비들이 정말로 믿었을까? 왜냐하면 중국의 고대 사상가 가령 순자(荀子) 같은 사람은 자연의 일과 인간의 일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율곡이 이 답안을 쓸 때가 23살이었는데, 경험이 없어서 순자의 이런 사상을 몰랐을까? 아니면 당시 시험관을 비롯한 다수의 선비들이 이런 동중서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관점을 따라서 답안을 작성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각자 판단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의 답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