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인자해야 한다


<역사속의 유교이야기16>

“지도자는 인자해야 한다”

 

곡은 29살 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가 여러 차례 과거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즉 ‘아홉 번이나 장원에 급제한 사람’이란 영광의 호칭을 얻게 되었지만 30대 초반까지는 아직 하급관료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퇴계 이황(1502-1571)과 고봉 기대승(1527-1572)이 대학자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율곡도 퇴계의 명성을 듣고 있어서 23살 되던 1558년에 퇴계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청한 바도 있었다. 퇴계는 성리학의 이기설(理氣說)에서 리(理, 이치)를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즉 리와 기는 서로 함께 번갈아 가면서 일어난다. 즉 발동(發動)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율곡은 이를 과감히 수정하여 ‘리’라고 하는 것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혼자서 주체적으로 발동할 수는 없다고 보고, 이기일도설(理氣一途說)을 제창하였다. 기가 발동하면 리는 거기에 편승할 뿐이라는 ‘기발이승(氣發理乘)’이라는 표현은 율곡의 그러한 사상을 대표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나 이 우주공간에는 사물들이 어떤 원칙이 없이 무질서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크게 보면 어떤 원리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달은 언제나 지구 주위를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달이 어느 날 지구를 떠나서 태양을 돌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럴 수 없다. 퇴계의 경우는 그 ‘규칙’이나 ‘원리’를 중시하여 리를 중심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그런데 율곡은 지구나, 달, 태양 즉 물질적인 것을 중시했다. 지구나 달, 태양이라는 물질이 없다면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규칙’이나 ‘원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질이 있어야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사상은 나중에 조선시대 유학의 대표적인 두 견해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사실은 시대의 흐름이 사람들의 인식을 그렇게 바뀌게 하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율곡의 선배학자인 퇴계가 임금인 선조를 향해서 ‘인자한 임금이 되시오’라고 가르친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선조 1년인 1567년 겨울(음력 11월 17일)에 있었던 이야기다.

선조가 글 잘하는 신하들, 즉 이황과 기대승 등에게 ⌈대학⌋을 배운 날이었다. 공부 장소는 비현각(丕顯閣)이었다. 선조실록에는 왕이 ‘소대(召對)’하였다고 하였는데, 소(召)는 부를 소, 대(對)는 대면할 대이니 비현각으로 불러서 대면하였다는 뜻이다. 비현각은 어떤 곳일까?

경복궁 사정전 동쪽에 위치한 동궁
경복궁 사정전 동쪽에 위치한 동궁

경복궁의 사정전 동쪽에 동궁이 있다. 동궁(東宮)이란 왕세자가 거처하는 곳으로 왕의 동쪽 궁궐에서 왕의 뒤를 이을 세자가 거처하면서 임금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곳이다. 왕세자가 거처하는 곳은 자선당(資善堂)이며, 그 한 켠에 공부하는 비현각이 있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건물은 1999년에 복원된 것이다.
선조는 임금으로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동궁이 편했던 모양이다. 동궁의 비현각으로 학자들을 불러 ⌈대학⌋ 공부를 하였는데, 이곳에서 이날 선조가 공부한 ⌈대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어짊으로 이끄니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 걸임금과 주임금이 천하를 포악함으로 이끄니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임금이 명령하는 것이 임금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에게 <선을> 갖추고 난 뒤에 남에게 요구하였으며, 자신에게 <악이> 없는 뒤에 남을 비난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능히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기 집안을 잘 다스리는데 있다.
(堯舜, 帥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 帥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 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 君子有諸己而後, 求諸人, 無諸己而後, 非諸人. 所藏乎身, 不恕,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 故, 治國在齊其家.)

이 앞에 나오는 ⌈대학⌋ 문장을 보면

“한 집안이 어질게 되면 한 나라가 어질게 되고, 한 집안이 사양하는 것을 중요시하면 한 나라가 그렇게 된다. 한 사람이 탐욕을 부리고 어그러지면 한 나라가 혼란에 빠지니, 일의 모양세가 이와 같다. 이것을 일러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기도 하며, 한 사람이 한나라를 안정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幾如此. 此謂, 一言僨事, 一人定國.”

라고 하여 어짐과 사양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퇴계 이황은 이러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왕에게 설명했다.

“‘임금이 되면 어질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인(仁)자는 임금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임금이 되면 어질어야 한다.’는 말은 대학의 앞쪽(「전삼장(傳三章)」)에 나오는 말이다. ‘임금이 된 자는 어질어야 한다. 신하가 된 자는 공경스러워야 한다. 아들은 효성스러워야하며, 부모는 자애로워야 한다. 사람들과 사귈 때는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이러한 말 중에서 ‘임금은 어질어야 한다’는 문장을 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었다.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운 것(仁義禮智)은 인간의 본성(性)에 있는 네 가지 덕(四德)입니다. 그런데 ‘어짐(仁)’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짐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은 바로 본성(性)이고, 그것이 발하여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정(情)입니다.”

명종이 그해 여름에 사망하고 정조가 그 뒤를 이었다. 여름에 명종이 사망하자 조정은 즉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선의 새 왕을 책봉해달라는 요구를 하였는데, 정식 허가가 난 것은 11월이 되어서였다.
당시 국제관계는 오늘날과 달리 명나라의 천자로부터 임금의 정통권을 받아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선조가 실질적으로, 명실상부하게 조선의 국왕이 된 것은 11월이었다.

11월 17일의 ⌈대학⌋ 공부, 특히 ‘임금은 어질어야 한다’고 하는 공부는 16살의 나이로 조선의 14대 국왕으로 막 등극한 선조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였을까? 아마도 백성을 위해서 훌륭한 정치를 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되어야겠다고 하는 결의에 찬 각오였지 않았을까?